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커버스토리] 대졸자 프리미엄은 옛말…SKY 나와도 절반은 갈 데 없다
20여년전만해도 ‘졸업장=취업보증수표’
스펙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
학점 낮아도 와달라는 회사 수두룩

외환위기이후 15년간 ‘고용없는 성장’
졸업생 3분의 1정도만 사회 진출

요즘 고교생들 “하고 싶은 일 도전”
2008년이후 3년새 진학률 10%P 하락



# 서울소재 대학에 다니는 조남성(26) 씨는 지난 설 연휴에도 가족 친지를 만나는 대신 도서관을 찾아야 했다. 겨울 내내 스펙(외적 조건)을 바짝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올봄 졸업예정인 조 씨는 지난해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평균 학점이 B 이상이지만 토익이나 여타 분야에서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대학을 나온다는 것은 ‘간판’ 하나를 얻는 일이었다. 고졸생 10명 가운데 3명 정도만 4년제 대학 문을 들어섰던 1990년,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스펙’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4학년생들은 과사무실에 쌓인 입사지원서 가운데 어느 직장을 선택할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곤 했다. 학점이 바닥을 깔아도 와달라는 직장이 널려 있었다. 이 때문에 시골 부모들은 우골탑을 쌓으면서도 아들ㆍ딸의 대학 입학만으로도 배가 부르던 시절이었다. ‘졸업장=취업보증수표’로까지 불렸던 대졸생들의 위상이 최근 들어 급전직하하고 있다.

IMF 이후 ‘고용 없는 성장’ 15년 이상 지속되면서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취업의 안전판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다 1990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늘어난 대학진학률(1990년 33.2→2008년 83.8%)은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바늘구멍’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대졸 평균취업률의 경우 정부 공식 통계는 60% 안팎이지만, 이는 취업대상자만을 고려한 수치로, 취업이 안 돼 휴학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까지 포함할 경우 졸업생의 3분의 1 정도만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른바 명문대로 불리는 SKY(서울ㆍ고려ㆍ연세대) 학생 중에서도 절반 가까이는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실질적인 대졸 실업자 수는 줄잡아 3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대졸 비경제활동인구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데 따른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비경제활동인구는 전체의 18.6%인 298만3000명에 달했다. 2000년 159만2000명에 비해 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대졸 비경제활동인구는 해마다 2~8%대의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에는 3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A 대학 영문과 사무실의 김모 씨는 “과거에는 사무실에 입사지원서가 뒹굴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취업설명회나 박람회 공지를 하는 게 전부일 정도로 취업한파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던 대학진학률도 최근 수년 새 하락세로 돌아섰다. 교과부와 한국교육개발원 등에 따르면 대학진학률은 지난 2008년 83.8%를 정점으로, 2009년 81.9%, 2010년 79%, 2011년 72.5% 등으로 불과 3년 새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일선 고교 진학상담 교사는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든 대학을 보내는 게 진학상담교사의 책무였으나 요즘은 학생들이 취직도 안 되는 대학을 가느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말들을 한다”면서 “일선 현장에서 보면 대학 프리미엄이 사라진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와 불황이 장기화조짐을 보이면서 올해 대졸 구직자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거래소ㆍ코스닥 상장사 961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대졸 신입 채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신규 대졸 채용인원은 4만239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만4459명에 비해 4.6%나 감소한 것이다. 아예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기업도 143개사(14.9%)나 됐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한 ‘운좋은’ 대졸자라 해도 요즘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해 전국 39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신입ㆍ경력사원 채용실태 특징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에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3.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사시험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사를 포기하는 ‘입사포기율’도 7.6%에 달했다. 신입사원 채용시험 합격자 100명을 기준으로 1년 뒤에도 재직하고 있는 근로자는 70.6명에 불과한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조직이나 직무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퇴사의 주요인이지만 최근에는 불안한 고용상황 탓에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재취업하려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이래 저래 대졸자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춘병 기자/ya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