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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 <41> 남미가 세계 최고 여행지인 이유…페루 리마
[리마=이해준 문화부장]드디어 남미의 마지막 여행지인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쿠스코에서 출발해 버스로 거의 21시간이 걸렸다. 리마는 ‘왕들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운데, 새롭게 변화하려는 남미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남미에 첫발을 디딜 때에는 외로움과 불안이 몰려왔지만, 마지막 여정이라니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도시=리마는 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도시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와 함께 중남미 5대 도시 가운데 하나다.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너무 크고 복잡하다. 구시가지인 역사 지구를 중심으로 지난 100년 동안 도시가 급팽창, 지금은 43개 지역(네이버후드)으로 나뉘어 있다.

리마에선 태평양과 접해 있는 신시가지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지역의 한 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미라플로레스는 해안 단구와 공원, 쇼핑가가 들어서 있는 리마 신문화의 중심지다. 역사지구와 가까이 있어 숙소가 많고 여행자로 항상 붐빈다.

도착한 날 오후 미라플로레스의 중앙공원이자 모든 투어의 출발점인 케네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공원 한편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남녀노소가 어울려 댄스를 즐기고, 시민들이 빙 둘러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평화롭고 멋진 풍경이다. 안데스 고산지역에서 내려와서 그런지 공기도 상쾌했다.

마침 이날이 일요일이어서 야간 시티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야경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으로, 역시 케네디 공원이 출발점이다. 리마는 야간에도 아름다운 도시였다. 옛 잉카 유적지와 역사지구 등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페루 리마의 신도시 미라플로레스의 케네디 공원에서 남녀노소가 어울려 춤을 추는 가운데 시민과 여행자들이 이를 지켜보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야간 조명을 받은 대성당 등 역사유적도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도 리세르바 공원의 야간분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법의 물 순환(Magic Circuit of Water)’이라는 이름을 붙인 분수쇼였다. 리세르바 공원은 1920년대에 조성됐지만, 2007년 분수공원으로 새로 단장, 리마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여름에는 하루 입장객이 4만~5만명에 달할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직선과 곡선으로, 시원하게 내뿜는 분수가 특수 조명에 화려하게 빛났다. 분수가 만드는 물의 장막에 레이저 빔을 쏘아 무희의 춤을 보여주는 장면은 하이라이트였다. 공원에 은은한 음악이 울려 퍼지자 분수 한가운데 발레리나가 나타났다. 다른 어떤 발레보다 멋지고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감탄사를 터졌다. 1시간 동안 화려한 물의 향연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스페인 유적을 간직한 ‘왕들의 도시’=도착한 다음날부터 3일 동안 버스 투어와 튼튼한 두 발을 이용해 찬찬히 훑어본 리마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도시였다. 외면으로는 ‘왕들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유럽풍의 건축물로 마치 스페인에 온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인간의 탐욕과 전쟁의 비극, 삶의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리마 미라플로레스 리세르바 공원의 야간분수. 분수의 시원한 물줄기 위에 발레 동영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리마에 왕의 도시란 별명이 붙은 것은 중미의 파나마에서 남하한 스페인 군대가 1535년 이곳을 수도로 삼아 옛 잉카지역을 통치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총독을 비롯한 주요 기관과 일대를 관장하던 주교, 무역회사 등이 모두 리마에 자리를 잡았다. 역사지구엔 이와 관련한 유적이 즐비했다. 리마 대성당과 주교관 및 수도원, 총독(피사로)의 집 등은 모두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했다. 특히 석조 건물에 나무로 된 발코니를 만들어 독특한 정취를 자아냈다.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며칠 돌아보아도 부족했다.

후아카 푸클라나(Huaca Pucllana)라는 고대 피라미드 유적지는 리마가 오래된 역사 도시임을 보여주는 곳이다. 잉카 이전의 유적으로, 라마와 같은 동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전을 올리던 곳이다. 이곳의 피라미드는 다 허물어져 기단부밖에 남아있지 않고, 태양신을 섬기는 고대문화의 공통점이기도 했지만, 지구 반대편 이집트의 상징을 여기서 본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리마 역사지구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건물들. ‘왕들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유럽풍 건물들이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아르마스 광장과 붙어 있는 리마 대성당이었다. 아주 화려한 성당이었는데, 거기에 리마를 건설한 피사로(Pizarro)의 무덤이 있었다. 천민 출신으로 용병에 참여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낸 피사로는 인생 역전을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와 파나마 식민총독까지 올랐다. 그는 남쪽에 황금이 넘치는 잉카제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남하해 잉카를 정복하고 총독이 된다. 하지만 황금을 놓고 갈등을 빚던 군 동료 알마그로를 살해하고 권력과 부를 독차지했지만, 이에 격분한 알마그로의 아들에 의해 암살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부를 위한 탐욕의 종말, 인생무상, 피의 대가를 보여주는 무덤이었다.

성당 한편에는 잉카제국 왕의 초상화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두고 있었다. 1200~1500년대 초 12대왕까지는 인디언이 왕이었지만 스페인 정복 이후엔 기독교 사제들이 왕위를 잇고 있었다. 정통성을 내세우는 것이었지만, 무언가 비애가 가득했다.


미라플로레스와 접한 100m의 태평양 해안단구도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다. 해변엔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 럭셔리한 호텔 등이 페루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서 가난을 벗어나려는 리마 서민들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10여년 전 여행기에 많이 등장하던 빈민촌은 많이 정비됐지만, 1인당 국민소득 6500달러인 페루인들의 삶은 힘겨워보였다.

▶남미 여행이 좋은 이유=리마를 마지막으로 남미를 떠나려니 아쉬울 따름이다. 당초 에콰도르와 콜롬비아까지 돌아본 다음 미국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회사로의 복귀 일정 때문에 일정을 대폭 단축해야 했다. 필자가 여행한 42일로는 부족했다. 최소한 3개월은 머물러야 남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다양성의 대륙이었다. 처음엔 고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특히 안데스는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손색이 없었다. 거기엔 몇 가지 매력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이다. 아름다운 오아시스들이 안데스 고원에 보석처럼 박혀 있고, 이곳은 청정한 자연의 원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파란 하늘,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 고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햇살, 쪽빛 호수 등이 모두 태초의 색깔이었다. 한국에서 보았던 색깔은 가짜였고, 이곳의 색깔이 진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안데스의 원색 디자인은 그 반영이었다.
 
리마 대성당 안에 있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무덤. 황금을 노리고 잉카제국을 무너뜨렸지만, 황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옛 동료를 살해하고 자신은 그 동료의 아들에 암살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둘째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물론 대도시에는 도둑도 많고 치안도 불안하지만, 소도시나 안데스 고원의 인디오들은 때 묻지 않은 자연과 같았다. 강한 햇살로 얼굴은 검게 그을었지만, 마음은 순백이었다. 세파에 시달려 닳아빠진 도시인들과 달랐다.

셋째는 이색적인 문화와 역사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유럽 이민자의 나라답게 유럽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지만, 안데스엔 전통 인디언 문화와 식민지 시기의 유럽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부활하는 잉카도 인상적이었다.

네째는 저렴한 가격이다. 칠레와 볼리비아, 페루의 서민 물가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됐다. 어떤 때에는 “내가 이들과 ‘공정거래’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환율’이라는 무기로 이들을 약탈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색깔)과 사람, 문화, 역사가 풍성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면 여행지로선 최고가 아닐까. 안데스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새롭고 이국적인 것을 찾아 아마존과 안데스의 오지를 여행하는 유럽과 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개발바람도 불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그 바람은 매우 강했다. 이런 속도라면 남미 오지까지 상업화로 물들어 고유의 문화와 인정이 탈색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았다. 닳기 전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천변만화하는 남미의 속살을 본 것은 큰 행운이었다.

hjlee@heraldcorp.com

6) 리마가 접한 태평양 해안단구. 100m의 깎아지른 절벽이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고, 미라플로레스의 현대식 건물과 잘 조성된 공원이 페루의 성장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2011년 10월 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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