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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까?‘ 채식주의자의 윤리는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미국의 농경학자 에번 프레이저의 ‘음식의 제국’에서 이미 세계 식품산업의 구조에 배신감을 맛본 이들에겐 음식에 관한 배신의 얘기라면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20년간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리어 키스가 쓴 ‘채식의 배신’(부키)을 잡는 순간, 또 한 번 불편한 진실에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저녁식사는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엄마가 있거나, 얼굴이 있는 건 먹지 않는다”고 큰소리 쳐온 키스는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에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채식주의 신화의 이면을 파고든다.

통렬한 심정으로 쓴 ‘개종기’인 ‘채식의 배신’에서 그는 먼저 채식주의의 도덕적 기반의 이율배반성을 지적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채식주의자의 주장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생명에는 식품이나 곤충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죽이는 것이 문제라면 풀을 먹고 자란 소 한 마리의 생명을 희생하면 내가 1년을 살 수 있지만 식물의 ‘아이’를 먹는 비건 식사 한 끼에는 산 채 끓이거나 으깬 쌀, 아몬드, 콩 등 수백개의 생명이 죽음을 맞아야 한다며 “이 식물의 아이들은 왜 죽어도 되는가?”라고 묻는다.

채식주의 윤리는 정의와 연민, 살아있는 문화를 끝없이 갈망하지만 그들의 윤리는 세상을 파괴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키스가 보여주는 농업의 생태계 파괴 현실은 농업에 대한 목가적 환상을 뒤엎는다. 키스는 채식주의자가 퍼뜨리고자 하는 한해살이 곡물식단이 오히려 대규모 파괴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원래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대다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었다. 이들은 섬유질로 된 몸속에 탄소를 격리하고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뿌리 체제를 흙속에 형성해 표토를 보존한다. 표토는 모든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흙인데 옥수수ㆍ쌀ㆍ밀ㆍ보리 등의 일년생 식물을 재배하는 농업이 시작되면서 표토는 유실된다. 곡물 재배를 위해 북아메리카 대목초지의 98%가 사라졌고, 3.6m가 넘던 표토는 이제 몇㎝ 남지 않았다.

키스는 “대륙 전체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져가는 이 광범위한 규모의 파괴를 채식주의자가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 곡물생산이 세계의 기아를 해결해주는 걸까. 그의 대답은 어림없다. 현재 곡물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건 거대 다국적 식품기업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곡물 교역의 절반을 카길과 컨티넨털이라는 두 회사가 장악하고 있고, 옥수수의 75%를 5개 기업이 통제하고 있으며, 콩 가공의 80%를 4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멀리서 운송해 오는 값싼 식량 제품은 안정적으로 식량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인 지역식량 생산을 파괴하고 있다. 풀을 먹던 반추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두고 곡물을 먹여 속성으로 키우는 공장형 축산이 가능하게 된 것도 결국 곡물 메이저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자가 제시하는 채식주의자가 갖고 있는 영양학적 오해와 편견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곡물에 기초한 식단은 전분과 당이 너무 많아 장에 과부하가 걸려 염증반응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에서 렉틴 같은 물질이 혈액으로 흘러들어가 체내의 면역체계를 혼란시킨다는 것이다. 궤양성 대장염, 류머티즘성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 건선 등이 일상화하는 이유다.

건강의 적으로 지목된 지방과 콜레스테롤은 사실 물질대사와 생리작용에 필수다. 지용성 비타민 A, D, E, K는 반드시 지방이 있어야 이동할 수 있고, 흡수가 된다. 또 인체의 장기를 둘러싸 보호하고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뇌의 60%가 포화지방이며, 신경전달물질의 정보 전달이 가능한 것도 지방 덕분이다. 콜레스테롤은 물에 녹지 않아 세포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으면 각종 암, 출혈성 뇌졸증, 호흡기 및 소화기 질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저지방, 무콜레스테롤, 고칼슘이라는 이유만으로 가공식품이 ‘건강식품’ 딱지를 붙이고 팔리는 현실은 거대 식품산업과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비건 생활을 시작한 것은 “소리 한 번 내 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는 생물을 품고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 나가는 미개척지 한 조각이라도 지켜내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채식 생활을 한 지 6주가 지났을 때 저혈당증을 경험하고 2년 사이에 퇴행성 관절 질환을 얻어 척추에 유산탄이 박힌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구토, 만성적인 우울증을 떠안은 채 살았다.

저자의 건강한 생태를 향한 열정과 사랑, 동식물계를 포섭하는 순환적 생명체계에 대한 이해 등 공감력이 크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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