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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겁고 깊게 매순간 사랑하며”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다/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흔들린다)

소외된 가난한 삶을 담백하게 내놓았던 함민복 시인이 부드러운 서정의 힘을 보여주는 다섯 번째 시집을 펴냈다.

2005년 10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 이후 다시 8년 만이다.

가난의 표정을 굳이 그려낼 필요없이 가난이 생활인 그의 갈빛의 시는 날카롭거나 메마르지 않고 촉촉하다. 한 편 한 편에 달항아리 품듯 눈도 맑아지고 둥그러진다. 가난하지만 모자라지 않고 따뜻하다.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결핍이 드러나지만 그는 끝으로 치닫지 않는다. 분노해 핏발 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시인은 빈 속에서 긍정의 힘을 차 올린다.

‘뜨겁고 깊고/단호하게/매순간을 사랑하며/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들을/당장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현실은 딴전/(…)/그래도/세상은 세계는/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단호하고 깊고/뜨겁게/매순간 나를 낳아주고 있다.’(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함민복의 시는 쉽게 읽힌다는 점이 큰 힘이다. 섣부른 수사도 없고 복잡하지 않다. 삶의 표정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그의 시어에 긴장이 스르르 풀려나간다.

익숙한 사물과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에서 사유를 끌어내는 것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다.

‘살아 움직일 때보다’ 더 무거운 고장난 시계, 녹이 슬어 버려진 저울 등에서 시인은 사물이 지닌 저마다의 본성과 가치, 고유성에 주목한다. 보이지 않는 것, 애써 보려 하지 않는 것, 우리 삶과 사회, 문명이 그의 시에 의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함 시인이 자신의 시를 “인간과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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