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내안의 악마’ 너는 누구냐
복수 위해 쌍둥이 형으로 위장하고…돈 위해 오빠 행세하고…며느리 정신병원에 가두고…요즘 드라마는 ‘욕망의 화신’과 배틀중
‘그 겨울, 바람이 분다’·‘야왕’
욕망 이룰 수 없는 하류인생들
가짜 행세하며 음모·복수극

“힘든데 좀 망가지면 어떤가”
고달픈 세상 독한캐릭터가 대세
현실의 고단한 삶 역설적 반영




요즘 TV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각각 한 가지씩의 흐름이 발견된다. 영화 쪽에서는 조폭영화의 인기다. 지난해 2월 개봉된 ‘범죄와의 전쟁’ 이후 경찰이 조폭이 되는 이야기인 ‘신세계’와, 양복 입고 다니는 기업형 조폭이 박수무당을 아울러 수행하는 ‘박수건달’ 등 조폭영화들이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7번방의 선물’과 ‘파파로티’에도 조폭들이 등장한다. 힘의 논리가 우선시 되는 조폭영화의 인기는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과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는 서로 속고속이는 전략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나 본심을 숨기고 다른 성격이나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기시스템을 주 내용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욕망을 쉽게 실현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비정상’이요 ‘반칙플레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한 쪽은 속임수가 탄로 나지 않게 하기 위해, 당하는 쪽은 진실을 캐거나 응징의 수단으로 복수 및 단죄극을 펼쳐 ‘계략배틀’의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야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과 영혼을 파는 인간시장의 이야기다. 주다해(수애 분)는 대놓고 남자(하류)를 배신하고 딸까지 버린 후 백학그룹의 아들 백도훈(정윤호)을 유혹해 결혼했다. 수애에게 버림받은 하류(권상우)는 죽은 쌍둥이 형인 차 변호사로 위장해 그녀를 철저히 끌어내리는 복수극을 펼치고 있다. 수애는 호스트바에서 몸까지 팔아가며 공부시켜준 남자를 버린 채 목숨을 걸고 아찔한 욕망의 사다리를 올라갔지만, 딸까지 있는 여자라는 사실이 들통나 다시 추락했다. 하지만 수애는 1회 첫 장면에서 총격전을 펼쳤을 때의 신분은 퍼스트레이디였다. 그러니 ‘야왕’은 외국에서 돌아온 수애가 와신상담해 가파른 사다리를 다시 올라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청담동 갬블러였던 하류인생 오수(조인성)가 78억원의 빚을 조무철(김태우)에게 갚기 위해 백만장자의 상속녀인 오영(송혜교)에게 오빠로 행세하는 멜로물이다. 오영은 시한부인생에 시각장애자다.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하다. 오빠 여동생이어서 같은 방에서 잠을 자지만, 사실은 남남이어서 안심이 된다. 둘의 멜로는 위험하지만 예쁘다. 오수의 위험한 오빠놀이는 적정선을 넘어섰다. 이미 송혜교는 조인성이 준 약이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약임을 알고 조인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비극과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요즘 드라마는 자신의 존재나 본심을 숨기고 속고 속이는 전략이 난무한다. 욕망을 쉽게
실현 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내용들이다. ‘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 위)‘ 야왕’ (아래).

‘백년의 유산’은 신분을 속이지는 않지만 악질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와 며느리 민채원(유진)의 계략배틀이 초반 내내 이어졌다. 막장 같은 배틀의 향연을 펼칠 때마다 시청률은 올라갔다. 박원숙은 며느리를 내쫓기 위해 유진을 정신병원에 가두고, 유진은 한 남자(이정진)의 도움을 받아 궁지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유진의 마마보이 남편 철규(최원영)는 극도의 지질함을 보인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시어머니가 유진의 친정아버지까지 유치장 신세를 지게 하는 계략을 꾸미자 며느리는 남편을 포기하겠다며 이혼하고 친정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7급 공무원’은 남녀주인공이 스스로 사기를 치지는 않지만 국정원이라는 국가정보조직이 이들을 사기꾼으로 만들어버린다. 김서원(최강희)은 국정원 훈육관인 김원석(안내상)과 장영순(장영남)으로부터 한길로(주원)의 아버지인 한주만(독고영재)이 산업스파이라는 증거를 잡는 작전을 수행하라는 미션을 받는다. 또 한길로는 자신의 아버지를 감시하는 임무를 받았다. 최강희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원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다. 이런 거짓시스템에서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순수함을 지킬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이 밖에도 ‘내 딸 서영이’도 여주인공인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거짓말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청담동 앨리스’도 청담동에 입성하기 위해 매뉴얼까지 짜 부잣집 아들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세경(문근영)의 눈물겨운 로맨스다.

남자건 여자건 배신하고 가짜 행세를 하는 건 현실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증거다. 각박하고 고달픈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순진하고 평온한 캐릭터로는 시청자를 위로할 수 없다. 세상이 힘드니 조금 독해지는 건 용납해 달라는 투다. 드라마 평론가 신주진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가짜의, 거짓의 삶을 살고 사기꾼이 된 것은 이 사회가 요구하고 부추기는 삶의 수준과 도저히 그것에 이를 수 없는 아래쪽 삶의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기인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