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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뿌리는 고려 중앙관료 귀족
한국사 40년 연구 UCLA 던컨 교수, 기존 신흥사대부론 뒤엎어… “고려말 신흥사대부 같은 新엘리트 집단은 없었다”
조선왕조를 창건한 주도세력은 고려말에 등장한 ‘신흥 사대부’라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이 새로운 엘리트 집단은 지방의 중소 지주, 향리 출신으로 과거시험을 통해 중앙관계에 진출했으며,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대지주이자 중앙의 문벌귀족이며, 불교를 신봉하던 종래의 엘리트 집단과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배경이 달랐다. 과거와 단절된 이질적인 집단이 새 시대를 열어 1392년 조선왕조의 성립은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이 신흥사대부론이다.

40년간 한국사를 연구해온 존 B 던컨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는 ‘조선왕조의 기원(원제: The Origins of the Choson Dynasty)’에서 이 통설이 허구라며, 조선왕조의 뿌리를 고려왕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선의 건국을 왕조 교체로 보지 않고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로 인식해온 통설을 뒤엎은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왕조의 건국은 고려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완성이다. 고려의 중앙관료 귀족이 지방의 귀족인 향리를 완전히 제압한 기나긴 역사적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다. “지방에 근거한 향리 출신의 지배층이 타락한 옛 중앙 귀족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중앙의 관료적 귀족이 지방자치적이며 향리 중심적인 신라-고려 교체기의 옛 제도에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란 설명이다.

던컨 교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려전기(10세기)에서 조선전기(16세기)에 이르는 거의 600년 동안 임명된 관료 5000명의 성분을 조사했다. 초점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엘리트와 고려시대의 엘리트 집단 사이에 뚜렷한 단절의 여부다.

그동안 1351년 공민왕 때 신흥사대부가 중앙관계에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던컨 교사의 실증 연구결과와 차이가 난다. 그는 조선전기의 주요 양반 가문으로 38개 집안을 꼽았는데 그 중 9개 집안만이 1351년 이후 관계에 진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가문과 공민왕 이전에 약간명의 관리를 배출한 7개 집안까지를 더한 16개 집안을 던컨 교수는 일단 신흥사대부로 가정하고 집중 분석한다. 그 결과 이 16개 집안조차도 조선 초기 중앙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왕조 교체의 주역은 더더욱 아니었다. 말하자면 고려말 ‘신흥사대부’같은 새로운 엘리트 집단의 출현은 없었다는 것이다.

고려후기 권문세족과 신흥사대부가 대립했다든가 권문세족이 도당의 핵심이었다는 데에도 던컨 교수는 의견을 달리한다. 권문이란 당시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세력가 개인 또는 집단을 가리키는 데 비해 세족은 전통깊은 귀족으로 그들이 다름아닌 사대부다. 고려말의 정치 현실을 볼 때 세족이 중심을 이루는 도당이 세족의 일부 구성원을 권문이라 하여 공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조선왕조의 기원’에는 그동안 알고있던 역사적 상식과 어긋나는 내용이 많다. 흔히 조선의 건국과 함께 고려 귀족이 대거 숙청됐다고 알고 있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게 던컨 교수의 주장이다. 고려말 유명한 귀족 가운데 조선왕조가 등장함으로써 몰락한 가문은 겨우 셋 정도이며, 그나마 16세기께까지 다 관계에 복귀했다.

여말선초의 신흥사대부는 문반이며 과거에 급제한 관리로 보는 견해에도 던컨 교수는 이의를 제기한다. 조선초기의 고위관료의 20%는 무반출신이며 조선초기에도 음직은 여전히 출사의 통로였다는 것이다. 성리학을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으로 보는 것도 기존의 연구에 비해 느슨하다. 불교는 여전히 양반, 왕실과 밀접했으며 사상도 복합적이었다고 본다.

던컨 교수의 탁월한 시각은 한국사를 바라보는 장기적 지속성이다. 고려-조선의 왕조 교체기의 연결성을 찾기 위해 그는 연구대상을 7세기 통일신라로부터 16세기 조선에 이르는 1000여년의 한국사를 해부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신흥사대부론이 굳어졌을까. 던컨 교수는 60년대 등장한 한국사 내재적 발전론을 지적한다. 해방 후 식민사학의 청산을 내세운 역사학이 한국사의 시기마다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해서 역사를 주도해 갔다는 발전사관이 주류로 자리잡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던컨 교수는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한국어판의 출판이 다시 여말선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일으켜 이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대해 더 좋은 책이 나오게 되길” 기대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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