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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뜨고 코 베어갈 유기농…식품업체는 규정 어긴 채 유기농 홍보, 정부는 팔짱
[헤럴드경제=홍성원ㆍ도현정ㆍ김현경 기자]지난달 2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유기농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00% 유기농 현미로 만든 과자예요. 아이들 건강에 좋아요.”

기자가 제품 포장 앞뒷 면을 살핀 결과, 어디에도 100% 유기농이라는 걸 입증할 수 있는 표시가 없었다. “100% 유기농이라면서 왜 인증마크도 없냐”고 묻자, 이 직원은 “그런 게 있어요? 그래도 완전 유기농이니까 안심하고 하나 사가세요”라고 말한 뒤 시선을 다른 곳에 뒀다.

웰빙 트렌드와 함께 유기농 먹거리 바람이 불면서 식품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유기농 제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유기농 원재료 함량에 따른 세부표시 기준(식품의약품안정처 고시)을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제품 포장에 사용하고 있는 걸로 헤럴드경제 취재 결과 드러났다. 

업체들로선 좋은 먹거리라는 이미지로 가격을 더 올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기농에 집착하는 셈이지만, 이를 감시해야 할 정부(농림축산식품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서로 소관 업무가 아니라며 핑퐁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불량식품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나선 만큼 유기농 제품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게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말로만 유기농’ 홍수…나누기ㆍ빼기하며 진품 골라야 할 판=소비자가 안심하고 유기농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농식품부에선 유기농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지만, 상당수 제품이 이 마크 없이 100% 유기농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주요 마트에서 팔리고 있는 ‘퓨어플러스 유기농 주스’는 ‘순수자연 100% 유기농 주스’ 라고 제품 전면에 표기하고, 뒷면엔 유기농토마토 페이스트 11.43%라고 써놨지만 어디에도 정부가 인증한 유기농 마크는 없었다. 친환경식품 전문 매장인 올가에서 파는 ‘유기농 딸기 스낵’도 마찬가지. 인증마크를 달지 않은 채 유기농 현미와 유기농 딸기 페이스트, 유기농 설탕 등을 사용해 총 유기농 함량이 96.34%에 달한다고만 함량 표시를 해놨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의 상당 비율이 유기농이면 다른 재료가 조금 들어가 있어도 100% 유기농으로 홍보하는 데 대한 매력을 떨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식약처의 유기가공식품의 세부표시 기준<표참조>에 따르면 유기농 원료를 100% 사용하지 않은 제품은 100%라는 문구를 쓸 수 없다. 유기농 재료 외에 다른 재료를 섞은 제품을 100% 유기농이라고 홍보해서도 안된다. 또 유기농 원료 비율이 70%이상~95% 미만인 제품은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제품명에 사용할 수 없고, 포장 앞면에도 쓸 수 없다.

허혜연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식품연구소 팀장은 “유기농 가공식품은 유기농 원재료 함량이 95% 이상 돼야 농식품부에서 인증을 받을 수 있다”며 “인증이 없이 유기농이라는 말을 쓰면 과장 광고로 판매 중지나 과태료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기농 표시 규정을 지켰더라도 진짜 유기농인지 의심스러운 제품도 적지않다. 규정 자체의 허술함을 비짚고 들어간 제품이 많은 것. 서울우유,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내로라하는 유가공업체가 만든 유기농 치즈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판매하는 유기농 치즈 고형분 자체의 유기농 비율은 80%대다. 그러나 제품 포장엔 95% 이상의 유기농 원료라고 써놨다.

업체의 해명을 듣다보면 소비자들은 치즈 하나 고르는 데 수학에서의 사칙연산을 해야 유기농 제품인지 알게 된다. A기업 관계자는 “치즈에는 정제수가 15% 들어가기 때문에 정제수를 제외한 고형분은 85%”라며 “고형분 85% 중 81%가 유기농 원료이기 때문에 정제수를 제외한 고형분 함량만 놓고 보면 96.3% 가량이 유기농으로,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제수까지 포함해서 따지면 유기농 원료가 전체의 81% 수준이지만, 고형분만 놓고 보면 유기농 함량이 95% 이상이 되기 때문에 유기농 문구를 썼다는 것이다. 치즈 고형분에 업체 재량에 따라 물을 많이 섞어서 치즈 완제품을 만든 뒤 유기농 꼬리표를 붙여도 소비자들은 알 길이 없는 셈이다.

영등포의 한 백화점에서 유기농 제품을 살펴보던 한 주부는 “야채에만 유기농 인증마크가 있는 줄 알았다”며 “가공식품은 유기농이라는 문구만 보고 제품을 골랐는데 기분이 찝찝하다”라고 말했다.

▶‘네 탓’ 공방 속 정부단속도 허술=취재진은 유기농 표시가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표시 위반 사례ㆍ건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시도했지만, 관계 기관 어디에서도 이를 집계하는 곳은 없었다.

현재 유기농산물과 유기가공식품 인증은 농식품부에서, 표시 위반 여부 등은 식약처에서 담당하는 식으로 이원화 돼 있어 유기농과 관련한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허위 광고에 대해선 단속을 하고 표시를 정지토록 하고 있는데, 단속은 식약처 소관”이라며 “위반 사례 통계 같은 건 우리쪽엔 없고 2008년 이후로는 지난해 유기농 녹즙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된 것 하나만 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인증기관이 농식품부인데 거기서 관리하지 않겠냐”며 “우리는 통계같은 것 없다”고 말했다.

이들 관계자들은 관련법이 개정돼 내년부터 유기농 통합 인증제가 실시된다고 밝혔다.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무늬만 유기농’을 솎아내는 작업을 소비자에게 미루고 있는 꼴이다.

홍성원ㆍ도현정ㆍ김현경 기자/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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