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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신 “일상서 매일 쓰는 그릇이 멋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우리 미술계에선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도예가의 조형물은 우위로 치고, 일상에서 쓰는 그릇은 좀 낮춰보는 풍토가 있다. 때문에 그릇을 만드는 생활도예가들은 작품을 만드는 도예가들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그릇 만드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이가 있다.

생활도자기를 제작하는 기업인 주식회사 ‘이윤신의 이도(yido)’ 대표 이윤신(55)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십년 넘게 일상에서 ‘쓰임’이 있는 생활도자기를 만들어왔다. 이윤신의 그릇은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그릇이 아니라, 물레를 돌려가며 일일이 손으로 빚어 굽는 수공예 작품이다.


생활도예 1세대 작가인 이윤신은 무수히 많은 생활자기를 빚어왔지만 그동안 사업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한동안 부친이 설립한 ㈜원신월드의 서울 가산동 패션아웃렛 ‘W몰’ 경영에 참여하느라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10일부터 가회동 이도(yido)에서 개인전을 연다.


‘살롱 드 이윤신(Salon de Yi Yoon Shin)’이라는 타이틀 아래 지난 20여 년간 만든 그릇들과, 최근 새로 론칭한 ‘윤빛’ ‘늘솔’ 라인 등을 선보이는 자리다. 푸른빛이 은은히 감도는 신작들은 세련된 조형성과 함께 지극히 간결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또 푸른 몸통 가장자리에 흙빛 태토(胎土)를 살짝 두른 ‘청연’ 시리즈는 신선한 감각이 도드라진다.

전시에는 세계적인 요리연구가 장 조지(57)가 진행한 미국 PBS-TV의 다큐프로그램 ‘김치 크로니클’(2011)에 사용됐던 그릇까지 총 400여 점이 출품됐다. 전시장 한쪽에는 실제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도 조성됐다.


이번 전시는 복합문화공간 ‘이도’의 리뉴얼 오픈을 알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이도’는 이윤신을 비롯해 국내 도예가들, 수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과, 도자기 만들기를 체험해보고 인문학 강좌도 수강하는 아카데미, 현대도자와 공예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 등으로 꾸며졌다.


홍익대 도예과와 대학원을 나온 이윤신은 도예가인 남편 원경환(홍익대 도예과 교수)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우리 공예계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 아래 일본에서 큐레이터 자격증까지 땄지만 선술집이며 라면집에서까지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 도자기문화를 전파하며 ‘도예 선진국’을 자임했던 우리가 오늘날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그릇을 아무런 생각없이 쓰고 있는 게 못내 안타까왔다.


귀국 후 이윤신은 수공예 생활자기 작업에 뛰어들었고, 1990년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전시 판매하기 시작했다. 갤러리· 아트페어에도 출품했다. 인사동 ‘쌈지길’과 소격동 한옥에 이도(yido) 단독매장을 꾸몄고, 2010년에는 가회동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최근 이 공간을 전면 리뉴얼한 이윤신은 “도예계에서는 나를 ‘그릇 만들어 파는 사람’쯤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도예 미(美)의 극치는 그릇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명품 도자기들도 술을 담거나 곡식을 담는 등 일상에서 늘 사용됐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도자예술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그이지만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손으로 만들다 보니 이윤신의 생활자기는 모양도,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또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수공예의 가치는 세계 어디에 가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지속될 거라 믿는다.


이윤신은 “그동안 사업 때문에 개인전을 못 열다가 5년 만에 개인전을 열게 됐다. 복합문화공간 ‘이도’의 리뉴얼을 계기로 도예가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좋은 음식을 아름다운 그릇에 담아 일상에서 수준높은 미의식을 향유할 수 있도록 쓰임새 있으면서도 품격있는 그릇들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프랑스의 오뜨 꾸뛰르처럼 매년 봄가을 신작을 꾸준히 발표해 고급 도예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회동 이도가 선보이는 ‘이도 아카데미’는 인문학, 음악, 미술, 요리가 어우러지는 복합 프로그램이다. 인문학 강의를 듣고, 음악을 감상하며 도자기를 빚고, 이를 요리와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새로운 포맷이니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30일까지. 02-722-0756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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