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쉼-스테이지/사이드/윌리엄 포사이스 “발레는 한계이자 위기”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이(異)종, 혼(混)종의 헤테로와 장소를 뜻하는 토피아를 합한 생태학 용어같은 이 말이 현대 무용 안무의 대가 윌리엄 포사이스가 첫 내한 공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공연제목에서부터 언어유희, 기존 주류를 해체하고 탈구축하려는 시도가 확연히 느껴진다.

윌리엄 포사이스(64ㆍ사진)는 공연에 앞서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보면 보기 힘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보긴 힘들지만 소리에 집중된 공연이다. 겉보기엔 무용이지만 사실은 콘서트, 연극이다. 한쪽 방에서 연주되는 콘서트 음악은 동시에 다른쪽 방에서 진행되는 다른 방을 위한 음악이다”고 풀어서 말했다.

헤테로토피아는 관객이 앉아서 무대를 감상하는 공연이 아니다. 무대는 여러개다. 관객은 움직이면서 이쪽 방과 저쪽 방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고 무용수의 춤사위를 봐야한다. 무용수의 손짓이 관객을 스칠 만큼 무대와 관객의 거리는 가깝다. 음악 역시 이질적이다. 포사이스는 “음악은 일종의 오페라처럼 들릴 것이다. 마치 존재하는 언어로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언어다. 때론 동물의 소음이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육성은 디지털로 전환돼 기계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말하자면 공간의 재구성, 음악의 재구성이다.

그의 작품은 포스트모너니즘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성장과정은 클래식과 매우 친숙했다. 그는 “굉장히 음악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바이올린으로 어린 신동으로 불렸다. 비엔나에서 12살에 데뷔했다. 아버지도 피아노를 하셨고, 나는 어릴때부터 바순, 플룻,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를 섭렵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지휘자가 맞는 성격이라고 하셨다. 1950-60년대엔 로큰롤에 심취했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동시에 접하면서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나는 바흐의 음악에서도 펑크가 느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를 예술세계로 이끈 것도 고전발레였다. 미국 조프리발레단 무용수를 지낸 그는 197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안무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독창적인 안무로 유럽 무용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발레단의 예술감독(1984-2004)을 거쳐 현재 ‘포사이스 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그는 “발레에선 음악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데 상당한 한계가 있다. 나는 무용수가 스스로 내적인 음악성을 발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용계는 발레의 미래가 과거와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란 걸 인정하지 않는다. 고집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린스키 극장 예술 총감독 발레리 게르기예프도 발레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한다.무용수들이 스포츠 선수처럼 하루에 11시간씩 연습하고, 1년에 50회 넘는 공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무용은 오케스트라의 운영비를 버는 좋은 수단일 뿐이다. 계속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은 작품만 올리는 이유다”며 무용계를 향해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10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헤테로토피아’ 공연은14일까지 이어지며, 전석이 매진됐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