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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지고, 노을 지고…남도엔 ‘봄 기억’ 이 핀다
[순천=글ㆍ사진 박동미 기자]일몰의 해변은 푸근했다. 봄바람이 사각사각 ‘풀의 소리’를 귓가에 전달한다. 나른한 평온함이 밀려온다. 붉은 빛으로 물드는 갯벌에 가만히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옛 사람들도 이 풍경이 참 좋았나 보다. ‘따뜻하게 누워 있는 바다’라는 정겨운 이름을 붙인 걸 보면. 전라남도 순천의 ‘와온(臥溫)’해변이다. 하루의 반은 지평, 또 반은 수평이 되는 갯벌 마을. 와온의 특별한 볼거리는 이 갯벌이 전부다.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짱뚱어ㆍ새꼬막ㆍ숭어ㆍ맛조개 등이 풍부한 ‘생명의 마당’이다. 아침 저녁엔 해와 달을, 낮에는 꼬막을 캐며 살아가는 와온 사람들을 품는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봄날의 꽃보다도 와온 마을의 갯벌이 더 아름답다”며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순천에서 세계 5대 연안습지(순천만)가 아닌 작은 바닷가를 먼저 찾은 이유다.



▶남도의 봄…꽃보다 곱게, 노을이 진다=와온해변은 동쪽으로 여수시 율촌면 기장리, 남서쪽으로 고흥반도와 순천만에 접해있다. 뒷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온(臥溫)이다. 밀물이 돼 갯벌에 사람의 흔적이 사라지면 그 위에 붉은 낙조가 드리운다. 바닥까지 훤히 드러냈던 솔섬이 바다 품에 안긴다. 순천 여행 최적기로 대부분 가을을 꼽지만, 와온 해변 인근 카페와 펜션은 일년 내내 사람들로 북적인다. 따뜻하고 온화한 풍경을 눈과 마음, 그리고 카메라에 담는다.

인근 카페에서 나온 한 남성이 출사객들에게 ‘사진 명당’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에 위치한 ‘놀펜션’ 주인 김용환 씨다. 와온해변을 정면에, 솔섬을 왼편으로 두고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펜션과 카페가 꽤 된다. 김 씨는 “일출 보러 새벽에 한번 더 찾아오라”며 “갯벌의 게들이 카페까지 기어올라오는 풍경이 장관”이라고 전했다. 이 말은 시각보다 미각을 자극했다. 갯벌의 진미, 짱뚱어와 꼬막이 떠올랐다. 해는 완전히 졌다. 때마침 출출해지는 때,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짱뚱어가 머릿속을 잽싸게 기어다닌다. 저녁 메뉴가 정해졌다. 

순천의 별미 짱뚱어 탕. 국물이 진해 숙취 해소에 좋다. 전골은 짱뚱어의 살을 발라먹는 재미가 있고, 구이는 과자처럼 고소해 술안주로 제격이다.

짱뚱어는 순천 ‘10미(味-고들빼기ㆍ대갱이무침ㆍ꼬막회ㆍ토종 갓김치ㆍ염소떡갈비ㆍ민물장어구이ㆍ해물탕ㆍ주꾸미구이ㆍ지리산순한우 등)’ 중 단연 으뜸이다. 순천 사람들은 ‘갯벌 위 소고기’라 해서 짱뚱어를 탕으로 즐겨먹는다. 큰 머리에 툭 불거진 두 눈…. 우스꽝스러운 생김새만큼이나 이름도 별나다. 10월 초에서 4월까지 겨울잠을 자는 습관 때문에 ‘잠퉁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순천만 인근에는 짱뚱어탕 전문점이 많다. 특히 순천만 자연생태관 초입과 별양면 사무소 주변에 오래된 식당이 몰려있다. 탕은 짱뚱어를 삶은 후, 채에 곱게 걸러 우거지와 된장, 갖은 양념을 넣고 5시간 이상 푹 끓인다. 국물이 진해 숙취 해소에 알맞다. 전골은 통째로 넣어 살을 발라먹는 재미가 있고 구이는 과자처럼 고소해 술안주로 제격이다.



▶남도의 꽃…고고한 ‘선암매’를 만나다=4월, 한반도 전역은 상춘객들로 붐빈다. 뉴스는 연일 꽃이 만개한 지역을 찾아가 소식을 전한다. 지난달 말 내린 봄비에 제주도 왕벚꽃은 자취를 감췄고, 부산 동백도 이제 ‘툭툭’ 떨어지고 있지만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새하얀 꽃물결이 대규모 인파에 산화할 때까지 ‘꽃 이야기’는 계속된다. 전라남도는 어떨까. 이미 와온해변의 노을을 붉은 꽃인 양 마음에 담았지만, 벚꽃과 산수유로 유명한 남원, 광양, 구례 등을 지척에 두고 ‘꽃놀이’를 외면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데 발걸음은 돌연 선암사(순천 송주읍 선암사길 450)를 향했다. 홍매화 축제(4월 6일~7일)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축제를 하루 앞둔 지난 5일, 선암사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화려한 매화터널을 상상했는데, 아직 만개하진 않았다. 꽃놀이 때를 놓친 이들은 이번주 말이라도 순천으로 가봄 직하다. ‘선암매(선암사 매화를 줄여 부르는 말)’는 원통전ㆍ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길에 약 50그루가 모여 있다. 원통전 담장 뒤편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2007년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됐다. 문헌 등 수령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600여년 전 천불전 앞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는 이야기만 사찰에 전해져 온다고 한다. 

와온해변을 따라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와 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송광사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조계산 계류를 건널 수 있게 조성한 무지개 모양 다리 승선교(보물 제 400호)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가 ‘국보’. 유홍준 교수(전 문화재청장)가 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로 선암사를 꼽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7.8㎞ 남짓한 ‘굴목이길’은 한국의 ‘산티아고길’로 불릴 만큼 인기 트레킹 코스다.

꽃구경은 선암매로 끝나지 않는다. 선암사 종무소 앞 작은 연못 곁에는 ‘처진 올벚나무’가 있다. 버드나무처럼 축 늘어진 가지에 벚꽃이 흐드러진다.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꽃잎이 연못 위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거울도 아닌데, 자꾸 물속을 들여다본다. 봄날이 간다. 꽃은 지고, 아련한 봄 기억이 핀다.

pdm@heraldcorp.com 

소설가 박완서가 “봄날의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 와온마을의 갯벌. 짱뚱어ㆍ새꼬막ㆍ숭어 등 수산자원이 풍부한 ‘생명의 마당’이다.
선암사 종무소 앞 처진올벚나무의 풍경도 일품이다. 흐드러지는 나무가지가 연못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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