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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청나라까지 빼어난 논변 펼친 100여명의 이야기…뒷말·몸싸움 대신 진정한 논쟁의 가치 발견
춘추전국시대, 강대국인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여 늘 침탈을 당한 약소국인 정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은 시 한 편으로 진나라의 침공을 막아냈다. 호시탐탐 정나라를 노리는 진은 분위기를 살피려 외교사절로 숙향을 보낸다. 그때 자산은 당시 각 제후국 사이의 국제 정치 역학관계를 교묘하게 결합한 시를 한 수 지어 숙향에게 바쳤다. 진나라가 정나라를 치면 이웃 초나라에 의지하겠다는 뜻을 사랑시로 담아낸 것이다. 자산은 백성의 소리에 늘 귀를 기울였다. 정나라 사람들은 나라의 큰일과 정치의 득실에 대해 향교에 모여 토론하기를 즐겼다. 정나라 대부 연명은 이런 광경이 못마땅해 향교를 헐자고 자산에게 건의했다.

자산은 반박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실행하고 싫어하는 것은 개혁하면 되지 않소? 백성의 논평이 곧 나의 스승인 셈인데, 무슨 까닭이 있어 향교를 헐어버린단 말이오?” 위세로 백성의 여론을 막는 것은 마치 강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흔히 빼어난 언변이나 말은 ‘세 치 혀’로 표현되며 진정성에서 의심을 받곤 하지만 말이야말로 진실과 믿음을 담지하는 가장 탁월한 그릇임은 분명하다. 설득과 협상, 논쟁의 기술이 최근 갑작스레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로부터 배움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말을 잘 부리는 일이었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밝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각자 자기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투며, 여럿이 서로 의논하고 상대를 깨우치는 논변, 논쟁의 역사는 길다.

‘쟁경(爭經)’(자오촨둥, 노만수 옮김)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중국 역사에서 빼어난 논변을 펼친 100여명의 인물 이야기다. 반박을 위한 반박이나 궤변이 아닌 겸애와 평화, 자유의 진리와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복무한 논변의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예악이 붕괴하고 사회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변화하는 대변혁의 시기였다. 이러한 대격변의 시대에는 투쟁과 모략에 능한 책사와 모신이 시대적 요구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게 마련이었다. 바야흐로 책사들이 유세를 펼치기 위해 천하를 종횡하고 제자백가들이 앞다투어 논쟁을 펼치는 시기가 도래했던 것이다.” (본문 중)

한나라 귀족 후예인 한비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지만 글로 논술하는 서변(書辯)에 뛰어났다. 한비는 한나라가 전쟁에서 잇달아 참패해 망국의 위기에 빠지자 여러 차례 왕 한안에게 글을 올려 법과 제도를 바로 세우는 부강론을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책을 저술했다. 그는 책에서 군주가 나라의 법을 혼란스럽게 하며 어진 인재를 등용하지 않고, 오히려 과장된 말로 허풍이나 떨고 진정한 재능과 실적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고 우대하는 행태를 엄하게 꾸짖었다. 한비는 어떤 일이든 모조리 법을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논술했다. 반면 논변에 대해선 극도로 혐오했다.

한미한 집안 출신인 왕충은 집이 가난해 책을 살 수 없어 낙양의 서점에서 노닐며 책을 한 번 보고는 그 자리에서 암기해 버렸다고 전한다. 그는 어떤 논변도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공자의 예를 비판하기도 했다. 공자는 “정치란 먹을 것을 충족히 하고 군비를 넉넉하게 하며 백성이 믿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중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백성의 믿음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왕충은 백성이 굶주려 자식까지 바꿔 먹는 처지에 식량을 버리고 거짓 믿음을 추구하라는 공자의 주장은 가장 무정한 가르침이라고 일갈한다.

재상 여이간은 범중엄이 그의 부패를 까발리며 반박할 때 말문이 막히자 범중엄에게 붕당 조장이란 죄목을 덮어씌워 그를 강등시키고 외지로 내쫓았다. 여이간의 이런 행실은 당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붕당싸움’을 일으켰다. 범중엄을 변호했던 이들은 줄줄이 좌천됐다. 조정 대신들도 잇달아 범중엄을 위해 한 마디씩 거들었는데, 구양수는 당시 붕당싸움에 대해 붕당 문제를 계통적으로 탐구하고 토론하는 문장인 ‘붕당론’을 지어 인종 황제에게 바쳤다.

논변에 익숙지 않은 사회는 안으로 쑥덕거리든가, 몸싸움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가치와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고 설득하며 이해하는 소통의 과정을 오랜 경전 속에서 배울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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