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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 이해준의 '희망가족' > 도전 · 모험의 281일 ‘지구 한바퀴’…그것은 행복이었다
<51·끝> 가족의 사랑을 확인한 힐링과 경이의 시간…여행기를 끝내며
두려움속 새로운 목표찾아 떠난 여행
다양한 사람·문화·역사와 소중한 만남
욕망 벗어나 내면을 키운 힐링의 과정

호스텔·대중교통 이용 최저경비 투어
아이들도 가족간 여행통해 훌쩍 성장
미지의 시간앞 여행은 아직 끝나지않아…



일본 도쿄(東京)에 이어 북부의 닛코(日光)를 돌아보는 것으로 대장정이 모두 끝났다. 닛코에서는 아내와 함께 산천경개가 수려한 기누가와(鬼怒川)온천을 즐기며 여행의 노독을 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위패를 둔 도조궁(東照宮)과 거목이 우거진 주변 유적지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세계일주를 무사히 마친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런 다음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니, 한국을 떠난 지 281일 만이었다. 동에서 서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다양한 사람과 문화, 역사를 만난 도전과 모험의 시간이었다.

마치 꿈속을 거닌 것 같은 황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다시 뛰어들어야 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치열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잠시 미뤄 놓았던 학업의 부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담이 더 커진 듯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달라졌다. 내가 바뀌니 세상도 그만큼 달라졌다. 과연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무엇을 남긴 것인가.

▶여행은 출발 전부터 시작됐다=우리 가족이 세계여행에 나선 것은 2011년 9월 말이었다. 하지만 실제 여행은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됐다. 거기엔 사연이 있다.

어느 가족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가족도 외면상 평화로워 보였지만 속으로는 헉헉대고 있었다. 필자는 20년이 넘는 기자생활에, 아내는 대학 연구교수와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등의 활동으로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이던 두 아이도 학업에 쫓기고 있었지만, 삶의 목표는 불확실하고 모호했다. 가족이 흔들렸다.

‘우리가 잘살고 있는 걸까’ 회의가 몰아치고, 한탄도 했지만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음 한구석에 접어 두었던 세계여행의 꿈이 아련하게 되살아났다. 2010년 5월 어느 날 필자가 아내에게 “1년 정도 세계일주 여행이나 할까?”하고 털어놓자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좋아, 가자!”라는 답변이 나왔다. 오히려 필자가 당황해 “그러면 돈은? 아이들 학교는? 직장은? 집은?”하며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동안의 고뇌를 익히 알고 있던 아내는 “일단 가는 걸로 결정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며 용기를 주었다.

장기간의 세계여행,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세계일주는 누가 끌고 갈 수 있는 성격의 여행이 아니다. 그러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여행을 삐걱거리다가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의기투합은 결정적이었다. 이어 아이들에게 계획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마음을 굳혔다. 특히 고등학생이던 둘째는 학교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필요했다. 모두의 마음을 모은 다음, 출발 5개월 전부터 매주 가족회의를 가졌다.

왜 가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삶을 짓누르던 절망이 꿈으로 바뀌는 순간이었고, 사실상의 가족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하는 게 세상이었다. 떠나기로 마음을 먹으니 길이 보였다. 집을 내주고 받은 전세금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필자와 아내는 직장을 정리했다. 큰아들은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둘째는 자퇴를 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목표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했다. 우리는 기존의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도쿄와 인근 지역을 잇는 기차는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이용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각국의 철도에는 각국의 전통과 문화가 스며 있어, 여행을 하는 또 다른 멋을 준다.

▶경비와 숙소, 교통편은 어떻게=여행을 다녀온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돈은 얼마나 들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답변하기가 적잖이 당혹스런 질문이기도 하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여행지, 말하자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을 여행하느냐, 중국이나 인도, 남미를 여행하느냐에 따라서도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우리 가족은 최저의 비용으로 여행했다. 잠은 가장 저렴한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교통은 대륙 간 이동을 제외하고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우여곡절도 많고 험한 여정이었지만, 그만큼 진한 추억과 감동을 남겼다. 숙소의 경우 적게는 4명, 많게는 12명이 한 방에서 잠을 자는 도미토리를 이용했다. 독립적인 숙소보다 불편하지만, 다국적 여행자와 어울려 여행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비싼 식당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을 최대한 이용했다.

이해하기 쉬운 여행경비 산출방식은 하루 경비를 따지는 것이다. 항공료를 제외하고 숙박, 식사, 교통, 관광지 입장료 등을 포함한 1인당 하루 여행경비는 아시아와 남미 지역에선 한화로 5만원 안팎,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10만~15만원 정도가 들었다. 물론 제3세계도 인도나 네팔, 볼리비아는 아주 저렴하고 아르헨티나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유럽에서도 노르웨이, 스웨덴 물가는 기가 질릴 정도로 비싸다.

큰 편차를 보이지만 대략 4인 가족 기준으로 제3세계가 하루 약 20만원, 선진국 40만~60만원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여행 도중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괜찮은 숙소에 머물며 피로를 풀려면 여기에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

항공편의 경우 처음에는 원월드(OneWorld)와 스타 얼라이언스의 세계일주 패키지를 검토했으나, 대륙 간 이동을 제외하고는 탈 일이 별로 없어 여행 도중 저가항공을 예약해 이용했다. 여행 계획 당시 세계일주 패키지 항공권이 1인당 550만원 안팎이었으나, 필요할 때마다 티켓을 끊어 실제 들어간 비용은 이보다 적었다. 각 대륙에는 현지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중국과 인도에서는 철도를, 유럽에서는 유레일패스를, 남미에서는 버스를, 미국에서는 대륙횡단 암트랙패스가 유용했다.

5명에서 시작해 1명으로 끝난 전체 여행경비는 항공료를 포함해 총 8000만원 가까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족여행은 여러 국면을 거치며 진행됐다. 먼저 아내와 두 아들 및 중학생이던 조카는 2011년 7월 중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2개월 정도 ‘서바이벌 잉글리시’를 배운 다음, 9월 말 홍콩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들어갔다. 이어 필자가 직장과 집 문제를 정리하고 10월 12일 중국 상하이(上海)로 넘어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세계일주가 시작됐다.

중국 대륙을 횡단해 티베트와 히말라야를 넘었고, 네팔을 거쳐 인도를 종횡무진 누볐다. 인도에서 터키로 넘어가 한국에서 온 형님과 동생 가족과 만나 터키를 일주한 다음,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고 우리 가족 4명만 남았다.

우리 가족은 그리스부터 시작해 유럽 대륙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주하고, 2012년 4월 아내와 큰 아들, 둘째 아들이 차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첫째는 군 입대를 위해, 둘째 아들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찾아 ‘지금 여행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정했다.

혼자 남은 필자는 광활한 남미와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진정한 자유인의 기쁨을 엽서로 전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아내를 만나 함께 여행을 마무리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필리핀으로 떠난 지 1년 만이었고, 필자가 상하이로 넘어간 지 9개월여 만이었다.

우왕좌왕, 좌충우돌,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가족간의 애정과 사랑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필자와 아내는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고, 가족 구성원 모두 독립심과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새로 섰다. 처음에는 필자와 아내가 여행을 주도했지만, 2~3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아이들이 ‘빨리 따라오라’고 다그치며 여행을 이끌 정도로 쑥쑥 성장했다.

네팔에서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인도에서는 콜카타의 테레사 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인도 나브단야의 시범농장에서 체험활동을 하는 등 단순한 관광지 순례가 아니라 현지체험 활동을 병행했다. 이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도 배웠다.

욕망과 집착,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 의연히 돌파할 힘을 키우는 것, 여행은 바로 그 내면의 힘을 키우는 힐링의 과정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새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흔들리고 있고, 앞으로도 흔들리겠지만, 한 번 그 고비를 넘어본 사람은 다를 것이다. 그동안의 여행이 경이의 연속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또 어떤 경이를 품고 있을까. 그 경이를 향한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해준 문화부장/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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