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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괴산 산막이옛길②--한반도 지형 가는 길, 또 하나의 사랑나무 ‘하트松’ 발견
 [헤럴드경제= 괴산] 딱 4개월만에 다시 찾은 산막이옛길이다. 지난 1월 중순 얼음이 꽁꽁 얼고 온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설경만 보고 갔던 충북 괴산의 이 산막이옛길에 지금은 신록이 무성하고 호수엔 유람선이 흰 물결을 일으키며 오간다. 완전히 색다른 경치다.

그때 봤던 똑 같은 것들이 이젠 연록색의 소품들과 함께 하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같은 곳도 사계를 두루 즐겨보면 더욱 좋다.

산막이마을 이강순(82) 할머니와의 약속으로 다시 찾았다. ‘꽃피는 봄’에 다시 꼭 오라고 했고, 그러겠다고 했었다.

괴산읍내에서 약 10km, 차로 10분 거리다. 넉달 사이 변화도 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확장하고 있었다. 전국적인 관광지로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넉달 전 좁고 굽은 길을 눈에 미끄러져 가며 운전했었는데.

산막이옛길의 명소 한반도지형.

주차장에서 산막이마을까지 오가는 길은 세가지가 있다. 산비탈 오솔길과 산 정상 등산길, 그리고 호수 유람선을 타는 수상루트가 있다. 지난 겨울에는 눈이 많아 산비탈길로만 오갔지만 이번엔 등산이 필수다. 호수로 파고 들어온 땅 ‘한반도 지형’을 보기 위해서다.

남북으로 긴 호수는 정확히 ‘S’자 형을 그렸고 동쪽 산비탈이 이 호수를 밀고 들어와 한반도지형을 만들어냈다. 이 지형을 제대로 보려면 호수 서쪽 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

이 산행을 통해 산막이마을까지 가는데에도 두가지가 있다. 천장봉 밑에서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오는 2시간 코스(2.9km)와 천장봉을 지나 삼성봉 쪽으로 내려오는 3시간 코스(4.4km)다. 필자는 등산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2시간 코스를 택했다.

산막이옛길 산책, 등산, 유람선 길.

출발지 주차장에서 언덕을 넘어서면 카페가 나온다. 이곳에서 커피부터 한 잔 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익살스럽고 귀여운 돌 조각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오줌싸개 소년과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앉은 행복한 미소의 소녀상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지난 겨울에 왔을 때는 옆길로 그냥 지나쳤었다.

주인이 7년 전 이 명당 터를 사서 내려왔는데 대한민국 1%의 길지라고 자랑하신다. 뒤에 낮은 산과 앞쪽에 호수, 전형적인 배산임수다. 카페 앞엔 사과나무밭인데 꽃이 하얗게 피어 ‘봄날의 눈꽃송이’ 같았다. 그 진입로에 갖가지 돌조각이 있는데 이는 모두 사왔다고 한다.

카페 정원의 익살스런 조각상.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화창한 날씨라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반팔티로 출발했다. 이 좋은 철을 어찌 놓치랴, 수많은 관광객이 함께 찾았다. 지난번에 봤던 지구 상 10억 주에 한 그루 나올까 말까 한다는 정사목을 거쳐 노루샘으로 갔다. 등산은 이 노루샘 오른쪽 길로 올라가야 한다.

해발 450m 등잔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처음부터 가파르다. 여기부터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호수를 등 지고 서쪽 가파른 산을 10여분 오르니 절로 헐레벌떡 거린다. 마침 이 곳을 찾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모델이 돼 줘 더 감성있는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호수와 맞은편 산을 바라보며 5분간 휴식. 다시 걷는다. 완전히 숲속이다. 풀냄새, 송진냄새가 진동한다. 최대한 심호흡으로 마음껏 마시며 서서히 오른다. 도중에 밧줄도 간간이 마련돼 있었다. 크게 위험하진 않았지만 안전을 위해서 잡는게 좋겠다.

산막이옛길의 돌담길, 노루샘(사진 위 왼쪽부터). 아래 사진은 노루샘에서 등잔봉으로 오르는 길.

이곳 경사지는 심하지만 지루하지 않은게 특징이다. 그건 아마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 비교적 쉽게 오르게 도와주는 것 같다.

필자는 도중에 멋진 소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노루샘에서 등잔봉으로 오르는 오솔길의 6~7부 능선 길 왼쪽 경사지에 여러 나무와 섞여 있는 한 소나무가 양쪽 가지로 하트 모양의 원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양팔을 들어 하트 모양을 하는 사람의 모습과 똑 같다. 그래서 필자는 이름을 정했다. ‘우리 함께 하트 그려요’ 라고 외치는 형상이니 ‘하트송(松)’이라고. 

산막이옛길에서 새로 발견한 사랑나무. 필자는 '하트송(松)'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데 한 쪽 가지는 힘에 부쳐 다 못들어 올렸다. 사랑은 나혼자가 아니라 옆에서 누군가가 배려해 주면서 함께 해야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임을 이 나무는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산엔 사랑을 주제로 하는 나무가 의외로 많다. 아까 본 희귀한 정사목과 연리지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숲 속의 나무 ‘하트송(松)’과 함께 연리지-정사목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결정체가 드디어 완성됨을 그 의미로 삼고 싶다.

여행 후 괴산군에 이 나무의 발견과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괴산군도 확인작업에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 나무를 잘 못보고 지나치는데 이것도 안내표지판을 붙여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면 좋을 것 같다. 연리지, 정사목과 함께 이 산은 온통 사랑을 나누는 세상이다. 이 세 나무는 꼭 보고 기운을 받아가면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등잔봉으로 오르는 내내 경치가 절경이다. 한 등산객이 멋진 포즈도 취해줬다.

이곳에서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오르니 등잔봉이다. 이 봉우리까지 오르는데 약 40분 정도 걸린다. 등잔봉은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아들을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려 효험을 봤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 해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높은 곳에 오른 만큼 호수와 산 그리고 주차장 쪽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등잔봉에서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한반도지형 전망대가 나온다. 능선길이 아기자기해서 이 역시 지루하지 않다. 드디어 한반도지형 전망대다. 능선에 오르면 어디서나 보이지만 이 위치에서 봐야 그나마 가장 좋은 각도다. 하지만 한반도지형과 아주 흡사하진 않다. 대체적인 윤곽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이것도 중요한 관광아이템이니 적극 홍보할 수 밖에. 어쨌든 가슴이 확 트이는 아름다운 경치임에는 틀림없다.

괴산 산막이옛길이 자랑하는 한반도지형이다. 멋진 경치에 가슴이 확 트인다.

앞쪽 절벽이 위험한데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 풍경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 유람선이 뽀얀 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에 오른 수많은 관광객은 일행끼리 줄 서 사진찍기에 바빴지만 필자는 저 경치를 찍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에서 사진 찍을 땐 조심해야 한다. 호수 쪽으로 절벽인데 전에 사진 찍느라 뒷걸음질 하다 떨어져 헬기가 동원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진달래능선으로 내려가는 2시간 코스의 마지막 하산길이다. ‘꽃 피는 5월’에 오라던 할머니와의 언약을 안고 찾은 만큼 기대도 컸다. 내리막 길, 큰 걸음으로 쑥쑥 내려갔다. 아차, 그런데 꽃이 안보인다. 아까 정상에서 변종 진달래 작은 숲을 지나긴 했지만 정작 진달래능선엔 꽃이 없다. 이미 져버린 것이다. 5월 초중순이라고 했었는데. 진달래 보는게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타이밍을 못맞춘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잠시 앉아서 쉬는데 낙엽 위에 담배꽁초가 눈에 띄었다. 누가 이런 낙엽이 쌓인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까지 버리고 갔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순간 옆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는 꽁초를 버리고 누군가는 돈을 빠뜨리고, 나는 그 둘 다를 주웠다. 결국 꽁초 하나 주워가는데 500원이다.

산막이옛길 진달래능선 낙엽 위에 버린 담배꽁초, 위험천만했다. 돌판에 새겨 전시해 둔 시, 떡메치는 관광객과 아름다운 물레방아가 힘차게 돌고돈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진달래능선을 내려가면 산비탈 오솔길과 만나는데 그 곳엔 돌판에 시를 적어 전시해 둔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곳에 시가 전시돼 있으니 더욱 예뻐보인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작은 계곡물이 내려오고 그 옆엔 물레방아가 운치있게 돌고돈다. 마당에선 떡메치는 소리가 정겹다. 아주머니가 떡메치다가 관광객들이 오면 쳐보라고 권한다. 사람들이 줄서서 떡을 사가기도 한다.

이제 이강순 할머니를 만날 때가 됐다. 마을에 들어서니 그 사이 또 하나의 집이 건축 중에 있었다. 전국적인 관광지가 돼서 그런지 한 집씩 또 늘고 있다. 아마 음식점을 할 모양이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문 앞에 나와계셨다. 할머니집은 입구의 집 뒤쪽 ‘하얀집’이다. 인사하고 “저 모르세요?” 했더니 “글쎄, 본 것 같기도 하네” 하신다. 간단히 설명해드리니 금세 알아차리신다. 필자가 앉아서 식사했던 식탁까지 기억하신다. 참 기억력도 좋으시다. 손을 꼽 잡고 정말 와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큰따님과 사위도 알아보고 반기신다. 

넉달만에 다시 만난 산막이마을 토착민 이강순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 할머니집 모습, 정말 연하고 졸깃한 맛의 도토리묵 무침, 그리고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이 집의 명물 좁쌀막걸리, 필자는 입에 대지도 못한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 날은 손님들이 꽉 찼다. 할머니도 힘에 겨워보이는데 상을 치우고 나르고 하신다. 손님 많은 모습이 좋아보였다. 겨울에 왔을 땐 입구 집엔 손님이 많았지만 여긴 손님이 없었다.

간간이 필자와 마찬가지로 할머니를 아는 듯한 손님들이 들어오며 반갑게 인사하곤 했다. 역시 할머니는 유명인사였다. 할머니는 이미 TV 등 매스컴에도 익숙하다. 식사를 하면서도 짬짬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건강하신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할머니는 “또 언제 와?” 하신다. 그러면서 여름에는 너무 더우니까 오지말고 단풍보러 오라고 하신다. 또 “예” 하고 돌아섰다. 그때 오면 세번째 길, 유람선에서 풍경을 즐길 것이다.

겨울풍경과 또다른 고공전망대, 녹음이 우거진 산비탈 길을 사람들이 가득 메웠다. 데크길 바로 아래는 깊은 호수다.

나오는 길은 계획한 대로 산비탈 오솔길로 걸어나왔다. 오솔길은 녹음의 터널이었다. 눈과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었던 넉달 전과 이렇게 달랐다. 머리 위엔 녹음이 우거지고 발 아래는 맑은 호수가 그림 처럼 펼쳐진 길, 심호흡하며 유유자적 노닐기에도 딱 좋다. 오솔길은 사람들로 붐볐다. 조금전 산막이선착장에도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찼었다. 도중에 있는 앉은뱅이약수엔 사람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물 한 모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막이옛길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 풍경 저 풍경. 오른쪽 하단 사진이 정사목이다.

산막이옛길의 봄풍경은 ‘사랑나무’들과 함께 진한 숲 향기가 오랫동안 여운을 뿌릴 것 같다.

산막이옛길에만 있는 다섯가지 즐거움이 있다. 산책, 등산, 유람, 여행 그리고 자유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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