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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석학이 본 세계문명의 패권의 향배는?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1848년 4월 3일 런던, 빅토리아 여왕은 나무 부두에 이마를 대다시피 한 채 20분째 무릎을 꿇고 있었다. 비에 드레스는 젖고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렸다. 부두에는 기영호를 타고 중국 기영 총독이 위풍당당하게 입성하고 있었다. 영국 여왕은 이제 청 제국의 종주권을 받들어 조공과 세금을 바치고 청 제국의 가르침을 받겠다는 예를 갖출 참이다. 남편 앨버트 공은 황제의 가신으로 인정받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고 자금성에 머물며 영국식 옷을 벗어던지고 변발한다.

스탠퍼드대학 이언 모리스 석좌교수가 뒤집어본 역사다. 실제로는 빅토리아의 영국은 중국 도광제를 파멸시키고 제국을 차 한잔으로 산산조각 냈다.

1839년 아편전쟁을 선포한 영국 전함은 중국 방어시설을 가볍게 무너뜨리고 기영은 무역과 선교에 중국 문호를 개방하는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한다. 역사는 왜 영국 손을 들어줬을까? 이언 교수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 펴냄)에서 이에 대한 답을 구체적인 수치와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흥미롭게 찾아간다.

누가 왕위에 앉았든, 선거에서 이겼든, 군대를 이끌었는지와 상관없이 19세기에 서양은 언제나 이기게 돼 있다는 서양 지배 논리는 두 갈래다. 장기고착파와 단기우연파로 나뉜다. 장기고착이론은 태고적부터 동양과 서양 사이에 대난히 크고 변경 불가능한 차이를 만들어내 산업혁명이 서양에서 일어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요인이었는지, 그 요인이 언제 작용하기 시작했는지 의견이 갈린다. 1750년부터 1950년 사이에 제시된 거의 모든 설명은 장기고착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치가 서양의 지배를 고착시켰다는 마르크스 버전은 장기고착론에 영향을 준다. 장기고착이론에는 ‘총, 균, 쇠’로 잘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가세하고 있다. 단기우연론은 우연적 사건의 결과로 서양이 패권을 쥐게 됐다는 가설이다.

저자가 누가 패권을 쥐는지 보여주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각종 통계기록과 고고학적 지식으로 가려낸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회발전지수’를 고안해 냈다. 사회발전지수를 산출하기 위해 에너지 획득과 조직화ㆍ도시성, 전쟁수행능력, 정보기술 등이 동원됐다. 이 가운데 저자가 가장 근본적인 항목으로 꼽은 것은 에너지 획득이다.

저자는 사회발전지수의 최고점을 ‘단단한 천장’으로 부르며, 이를 뚫을 때 문명의 혁신이 이뤄지는 것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사회발전지수 43점은 역사상 가장 단단한 천장을 기록한 지점이다. 1세기 로마 제국이 이 천장에서 튕겨져 나와 붕괴의 길을 걸은 이후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17세기까지 이 천장을 뛰어넘어 발전을 구가한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왜 서양인가’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발전의 역설’이다. 사회는 발전할수록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힘과 만나게 되는데 그 힘이 바로 발전의 역설이다. 발전의 역설은 끊임없이 작동하면서 어떤 시점에서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변화로만 뚫을 수 있는 ‘단단한 천장’을 형성한다. 사회발전지수가 이 단단한 천장을 부수고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상 사회는 정체되거나 붕괴된다. 기근이나 질병, 이주, 국가실패, 기후변화 등 다섯 가지가 문명을 압박하는 재앙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원전 1200년 이후 주변부 이민족의 이주와 기후변화 등으로 파국을 초래한 시점의 사회발전지수는 24점이다. 이때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서양의 아시리아, 페르시아는 신정에서 탈피해 중앙집권화로 이를 극복했다. 두 번째 천장은 43점짜리다. 서기 1세기 로마 제국은 질병과 이주에 의해 천장에 튕겨져 붕괴의 길을 걷는다. 11세기 송나라 역시 이 압박을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졌다. 43점 천장은 결국 17,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돌파된다.

문명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저자의 또 다른 통찰은 ‘후진성의 이점’이다. 사회발전 수준이 변화함에 따라 한때 중요하지 않았던 지역들이 자신의 미진했던 부분에서 오히려 유리한 요소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17, 18세기 서유럽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태동한 서양의 문명이 지중해 지역으로 옮겨갈 때까지만 해도 서유럽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대서양 경제가 지중해 경제를 대체하면서 서유럽의 약점은 강점으로 작용해 오늘날 패권을 누리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17세기 산업혁명 이래로 사회발전 증가속도는 가속화돼 2013년 도달할 사회발전지수는 무려 5000점이 된다. 900점을 얻은 현재 인류는 원자폭탄과 환경파괴의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천장을 뛰어넘을 묘안은 에너지 획득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3년 동양의 사회발전지수는 서양을 앞선다. 동서양이 갈라진 1만6000년의 역사를 저자의 비유적이고 경쾌한 문장을 타고 단숨에 훑어 내려올 수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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