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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룩셈부르크!’..유럽서 K아트 알리는 조각가 박은선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세계 무대를 향해 뛰는 작가들은 많다. 특히 해외에서 유학한 작가들은 너나없이 글로벌 아티스트를 꿈꾼다. 하지만 현지의 높은 벽을 뚫고, 작가로서 당당히 이름 석자를 또렷이 각인시킨 예는 흔치 않다. 대부분 중도에 작가에의 길을 포기한채, 교수 자리를 찾아 고국으로 되돌아오기 바쁘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아티스트가 귀한 우리 미술계에서 유럽을 무대로 맹활약 중인 박은선(Park Eun Sun)은 매우 돋보이는 존재다.

경희대 미대 출신의 박은선(48)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카라라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21년째 작업하며 이탈리아는 물론 스위스ㆍ벨기에ㆍ독일ㆍ네덜란드 미술계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 2008,9년부터는 매년 10개 안팎의 굵직굵직한 초대전을 소화하며 바삐 뛰고 있는 그가 올여름에는 룩셈부르크 에스페랑주 시(市) 초대전과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의 노바라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동시에 개막했다. 그중에서도 룩셈부르크 전시는 특히 괄목할 만하다.

높이 6m에 달하는 초대형 신작 3점 등 50여점의 화강석 조각을 선보이는 메가톤급 전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 7000만원에 달하는 전시비용 전액을 룩셈부르크 측에서 부담한 것도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떠오르는 ‘신흥 금융의 메카’에서 펼치는 조각전=박은선은 지난 7일 룩셈부르크 에스페랑주 시 공원에서 ‘Human Nature de 박은선’의 개막식을 가졌다. 드넓은 잔디공원에는 박은선의 6m짜리 대형 돌조각 3점을 비롯해 3~4m 크기의 조각 등 모두 18점의 작품이 설치돼 장관을 이뤘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실내 갤러리에는 크고 작은 조각 30점을 별도로 전시했다. 오는 9월 말까지 이어지는 박은선의 룩셈부르크 전시는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시민들이 앞다퉈 찾는 도심의 핵에 해당되는 시(市) 공원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 측이 공원 전체에서 동양 작가의 단독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박은선이 처음이다.

박은선은 “벨기에, 독일, 프랑스와 인접한 강소국인 룩셈부르크는 떠오르는 금융의 메카로, 중세및 근대미술 수작을 풍부히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이 나라는 최근들어 현대미술관을 새로 오픈하는 등 현대미술 부문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다른 유럽 국가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동양 작가의 대형 전시를 열어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복안 아래 작가를 찾았는데 유럽에서의 내 활약을 눈여겨본 현지 관계자에 의해 발탁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했다.

밝은 빛 돌과 어두운 돌(화강석)을 띠처럼 차곡차곡 이어붙여 거대한 삼각뿔 모양의 기둥으로 만든 박은선의 신작은 종전 작품보다 한결 파워풀하고 다이나믹해 호평을 받고 있다. 기하학적인 세련미와 함께 음과 양, 직선과 곡선이 하나로 결합되며 동양적 정서를 확보하고 있어 유럽에선 ‘동양적 추상조각’으로 불린다. 특히 작품 중간 중간에 의도적으로 만든 균열(틈)은 일종의 ‘숨통’으로 작품의 생명력을 더해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시를 주관한 에스페랑주의 마르크 리에(Marc Lies) 시장은 “박은선의 조각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멋지고, 다이나믹하다. 세계성을 띄고 있으면서도 동양적 고유성을 잘 보여줘 더 특별하다“며 “작품이 설치되자마자 에스페랑주 시민은 물론, 이 지역을 오가는 비즈니스맨과 관광객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반겼다.


이미 벨기에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에서 크고 작은 초대전을 개최하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박은선은 이번 룩셈부르크 전시를 계기로 이 지역에 자신의 조각세계를 더욱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밀라노 인근의 대형 스튜디오에서도 초대전=룩셈부르크에서의 전시 오프닝을 열기가 무섭게 박은선은 남쪽으로 차를 일곱시간 넘게 달려,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의 노바라(Novara)에서 8일 오후 6시 전시 개막식을 또 가졌다.
노바라 시에 위치한 마테리마 코페르니코(대표 니콜라 로이)에서 ‘박은선-새로운 형태(Nuove Forme)’라는 타이틀로 초대전을 연 것이다. 마테리마 코페르니코는 대규모 야외 조각전시장, 스튜디오, 실내갤러리, 레지던스 등을 갖춘 복합문화센터로, 밀라노 지역을 대표하는 조각전문 미술관이다.

이곳에서의 초대전에 박은선은 최근 제작한 타워형의 간결한 신작을 비롯해 모두 20여점의 작품을 내놓아 비평가 및 애호가로부터 “종전 작업에서 훨씬 진일보한 면모가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10여년 넘게 박은선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초대전과 함께 도록도 여러 권 펴낸 니콜라 로이 대표는 “박은선은 이탈리아 피에트라 산타에서 작업하지만 독특한 조형세계로 이탈리아는 물론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반응이 매우 좋다. 거장의 작품과 나란히 놓아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역동성이 돋보인다”고 귀띔했다.

박은선은 “K-팝이 유럽 전역에서 성가를 높이는 데 이어, K-아트를 알릴 수 있는 선봉에 서있어 무척 감격스럽다. 작가로서 경쟁력있는 작업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정공법으로 현지 미술계를 공략하는 게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며 “향후 3, 4년까지는 조각비엔날레 등 유럽 각국에서의 전시 일정이 워낙 빡빡하게 잡혀있어 고국에서의 전시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여세를 몰아 유럽에 한국 미술의 독창성을 더 깊고 넓게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세계 조각의 메카인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 마리노 마리니, 호안 미로, 보테로, 마크 퀸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피에트라 산타를 거점으로 ‘K-아트‘의 파워를 드높이고 있는 박은선은 작년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지 꼭 20년을 맞았다. 그리고 올해부터 제2의 도약을 위해 더욱 힘차게 뛰고 있다. 박은선의 공공 조각은 이탈리아 및 유럽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휴양도시 포르테 데이 마르미를 비롯해 피에트라 산타, 알마 시(市) 초대전을 비롯해 마리노 마리니 미술관 개인전 등을 개최했던 박은선은 유럽 조각계를 대표할 조각가로 활동 폭을 차근차근 넓혀가고 있다. 유럽에서 ‘K-아트‘를 각인시킬 그의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글.사진= 노바라(이탈리아)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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