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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여성들이 왜 아픈데가 많을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소설가 김훈이 젊은 기자 시절, 황순원 선생에게 원고료를 전하기 위해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선생은 아파 누워 있고 머리맡에 약 봉투가 놓여 있었다. 책에서 보아온 이름이 동네 의원에서 지은 약 봉투에 동네 의사의 글씨로 ‘황순원’이라 적힌 걸 보고 김훈은 기가 막혔다. ‘선생님도 생로병사를 통과하고 있구나, 글은 그 생로병사의 산물이구나.’

병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병을 통해 몸을 확인하고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근원과 만나게 된다.

의학전문기자 김철중의 ‘내망현’(MiD 펴냄)은 질병을 통해 사회를 함께 들여다본 메디컬 소시올로지다. 종래 의학이나 건강 책들이 진단과 치료에 치중한 것과 달리, 이 책은 질병을 통과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관계, 인간다움을 얘기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사회에 발맞춰 뛰어온 중년의 질병, 선천성 장애아와 낙태, 간 이식의 한국사회 풍토, 기억상실증과 사라지지 않는 정서기억 등 병에 대한 이해와 병의 이면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저상버스와 자동문, 레버형 문손잡이, 전동칫솔 등 처음에는 장애인을 위해 개발됐지만 모두가 쓰게 된 다양한 생활용품들, 치매와 걷기, 소금과 고혈압, 스마트사회와 뇌의 퇴화 등 생활 속에 병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여성들이 아픈 데가 더 많은 이유, 외과의사들이 앓는 주부습진, 성전환 수술을 받겠다고 나선 남편의 얘기도 시선을 끈다. 수술수당으로 운영되는 병원 실태, 쓸 만한 치료법이 있어도 입 다무는 의사들 등 의료계 비리도 지적한다.

우리 삶에 건강과 의료가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현미경으로 살피고, 가야 할 방향을 망원경으로 보여준, 의학과 사회학의 깊이와 새로움을 함께 만날 수 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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