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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의 역사' 그 은밀한 공간 엿보기
왕의 침실부터 여인의 방까지 온갖 이야기
[북데일리] 매일 잠자는 ‘방’에 대한 이야기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방의 역사>(글항아리. 2013)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거처로서 방(침실)이 변모해온 역사와 다채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를 아우른 최초의 역사서다.

방은 이미 다양한 역사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나 방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식이나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역사 무대 한가운데에 등장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는 파리 7대학 명예교수 미셸 페로.

왕의 침실과 여인들의 방. 닫힌 방과 사라진 방.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 상상을 뛰어 넘는다. 독자는 저자의 눈을 빌어 다양한 침실을 순례할 수 있다. 먼저 왕의 침실. 중세의 성에서 르네상스기의 궁전까지 귀족이나 왕이 건축한 거대한 공간에서도 독자적인 공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즉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옛날 왕은 수많은 ‘시종’과 함께 거처했다.

다른 방을 통과하지 않고 각자의 방으로 갈 수 있는 공간, 이른바 복도가 탄생한 것은 17세기 영국의 대저택에서다. 한 학자는 이를 두고 개인주의의 기원을 영국 엘리트층에서 찾았다.

저자에 따르면 방은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구체화한다. 방의 공간적 배치는 사회적 지위, 세대, 남녀에 따라 다르며 시대에 따라 바뀐다. 따라서 “방들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를 재현한다.”고 볼 수 있다.

방은 헤아릴 수 없는 사연과 긴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그에 관한 자료들은 매우 드물고 분산되어 있으며 미세하다. 이에 저자는 문학작품에 주목했다.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처럼 주인공들의 성격과 품행, 운명뿐 아니라 그들이 등장하는 침실을 그림처럼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19세기 소설가들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그들의 작품에서 얼굴 생김에 대한 묘사가 그 사람의 기질을 말해주듯이, 침실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들은 방 주인의 사회적 지위, 성격, 불행, 야망과 일치한다. 따라서 침실에 대한 그들의 사실적 묘사와 은유적, 이데올로기적, 사회적, 심리적 해석은 사교계와 가정을 무대로 한 사적 영역의 역사나 같다.

오늘날 성인은 대부분 각자의 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이를 테면 여성과 방의 관계가 단적인 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적 공간을 차지하려고 애쓰는 여성들을 주목한다. 근대 이후 방이 전문화되면서 남성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 흡연실, 서재 등 고유의 공간에서 보낸 반면 여성은 부부 침실을 자기만으로 것으로 만들려는 경향을 보였다.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여성들은 일하고 공상하고 글을 쓰고 기도하고 사랑받기 위해 남자들보다 훨씬 더 자신들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을 원했다. 침실 창문에 앉아 있는 여자 몽상가들이나 거의 벌거벗은 채로 카나페, 소파, 침대 위에 길게 누워 있는 여자 독서가들에 관한 에로틱한 상상 역시 그런 갈망을 부추겼다. 침실은 여성의 공간이었고 여성은 그곳의 지배자였다. 다른 한편 종교, 가족질서, 도덕, 품위, 정숙함 역시 여성을 침실에 붙들어놓는 데 기여했다. 이런 경우 종종 여성들은 원하던 자신만의 공간을 얻기는커녕 감금과 고독의 상태에 처했다.”

책은 방의 여러 모습을 통해 공과 사, 가정과 정치,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관계를 읽어내고 죽음과 출생, 사랑, 노동, 여행, 벌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저자가 쏟은 땀방울로 인해 우리는 왕부터 노동자까지 은밀한 침실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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