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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 이야기6>상수동 팥빙수의 복고열풍, ‘옛날 팥빙수를 아시나요?’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7년 여름. 충격적이었다. ‘이런 노래가 다 있어?’ 수목원에서,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 부디…. 감미로운 목소리와 마음을 파고드는 서정적인 가사의 ‘음유시인’ 윤종신이 희한한 노래를 선보인다. 이름도 간단명료하다. ‘팥빙수’.

그런데 그 이후 매년 여름만 되면 중독이라도 된 듯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그 얼마나 유치한가. 알면서도 여름이 오면 수많은 이들의 입가엔 자연스레 흥얼거리는 계절송, 아니 ‘음식송’이 됐다. 이 정도면 경영학이나 마케팅학 수업의 주제로도 널리 활용될 만하다. 노래로까지 칭송받는 음식이 또 얼마나 있을까? 


음식이 사랑이나 이별, 연인의 ‘메타포’로 쓰이는 것도 아니다. 이 노래는 온전히 팥빙수의 제작과정과 특징으로 시작해 팥빙수를 향한 애정으로 끝이 난다. 그 순수성은 가히 다른 음식 노래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2007년의 팥빙수와 2013년의 팥빙수는 다르다는 것. 가수 윤종신이 지금 팥빙수의 가사를 썼다면 아마 좀 다르지 않았을까?

2000년대 초중반, 대학가와 서울 번화가엔 아이스베리로 대표되는 팥빙수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건 쟁반빙수. 냉면도 담을만한 큰 그릇에 수박, 딸기, 메론, 키위, 그리고 산처럼 높은 아이스크림까지. 전통적인 팥빙수에 싫증을 냈던 고객들에게 이 같은 팥빙수는 신기원과 같았고, 제과점, 패스트 푸드점 등도 연이어 과일과 각종 프루츠칵테일 등이 듬뿍 들어간 팥빙수를 선보인다. 윤종신 팥빙수의 가사에도 이 같은 인기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프루츠 칵테일의 국물은 따라 내고 과일만 건진다 건진다. 체리는 꼭지체리 체리는 꼭지체리 깨끗이 씻는다 씻는다. (중략)

찰떡 젤리 크림 연유 빠지면 섭섭해~얼음에 팥 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일단 언급된 재료만 해도 프루츠 칵테일, 체리, 젤리, 찰떡, 크림, 연유 등등. 마치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운 팥빙수다.

지금도 많은 곳에선 이 같이 다채로운 팥빙수가 인기이겠지만, 상수동만큼은 예외이다. 최근 몇년 간 과거로 회귀한 듯한 팥빙수가 인기를 끌더니, 올해 여름에는 그야말로 팥빙수업계에 ‘복고열풍’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얼음에 팥, 우유. 이게 전부인 옛날 팥빙수. 그런데 그 맛과 내공이 결코 만만치 않다. 사이즈도 작고 내용물도 줄어든 대신, 오로지 ‘팥’이란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 



홍대 주차장골목 끝에 위치한 옥루몽은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메뉴는 몇 가지 음료수 외에 팥빙수와 팥죽 뿐.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후 맛있는 팥죽집으로 입소문이 퍼지더니, 올해 여름부턴 상수동 대표 팥빙수 집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산 팥에 한국 전통의 방짜 그릇, 가마솥을 사용하는 제작기법 등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필자처럼 ‘아무리 맛있어도 줄 서는 건 싫다’ 이런 분들은 맛보기 힘든 팥빙수이다. 필자 역시 긴 줄에 오기가 생겨 자정 무렵에도, 이른 아침에도 찾아갔지만 줄을 피할 수 없다. 단, 조금만 더위를 참고 기다린다면 명성 만큼이나 그 가치는 충분하다. 팥도 맛있지만, 잘 녹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우유 얼음이 압권.

죽어도 기다리는 게 싫다면? 그래도 대안은 있다. 걸어서 5~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405키친에도 옥루몽과 똑같은 팥빙수를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두 가게가 서로 재료를 공유해 사용하니 옥루몽과 분위기만 다를 뿐 팥빙수는 같다. 브런치로도 유명한 이 카페에서도 같은 팥빙수를 주문할 수 있으니, 굳이 긴 줄을 서지 않더라도 이곳에서도 옥루몽의 팥빙수를 맛볼 수 있다. 



상수역 인근에 있는 ‘힘내라 단팥죽’도 팥빙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5~6명 내외 앉을 수 있는 작은 음식점 내에 파는 건 팥죽과 팥빙수 뿐이다. 직접 국내산 팥을 삶아 내놓는 팥빙수가 일품.

테이크아웃도 된다. 마치 스타벅스를 들고 다니는 뉴요커처럼 말이다. 일회용 컵에 담긴 팥빙수를 손에 들고, 수저로 살며시 얼음과 팥을 섞어가며 거리를 걷는 기분은 꽤나 이색적이다. 더위에 헉헉거리는 행인들을 보며 어깨도 한번 으쓱. 그 맛에 팥빙수를 ‘테이크아웃’ 한다. 



그밖에 상수동 내엔 팥빙수집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천연 발효 빵집으로 유명한 악토버에서도 구례산 팔을 삶아 사용한 팥빙수를 선보였고, 최근에는 홍밀밀이란 팥 전문점도 생겼다. 홍익대 정문 앞 제너럴닥터나 상수역에서 강변북로 방향으로 언덕을 넘다보면 보이는 케이트 등도 팥빙수로 명성을 떨치는 곳.

어린 시절부터 팥빙수를 무척 좋아했던 필자에겐 그야말로 행복한 계절이다. 여름철 반가운 손님, 게다가 추억이 담긴 옛날 모습 그대로 돌아온 팥빙수는 더욱 반갑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또 한 해 한 해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만 팥빙수만큼은 다시 예전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 같아 더욱 반갑다. 입맛에서 퍼지는 달콤함과 시원함에 옛날 추억의 맛도 같이 느껴지는 듯하다.

여름, 팥빙수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한 계절이 됐다. 팥빙수를 찾아다니는 맛에 상수동도 조금 더 행복한 동네가 됐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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