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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예천 회룡포--한 눈에 쏙 넣는 ‘한국판 그랜드 캐년’

 [헤럴드경제=예천] 천년 사직 신라가 고려 왕건에게 간판을 반납하자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향했다. ‘보장받은 왕’의 자리를 눈 앞에 두고 태자의 신분으로 무대 위에서 영원히 떠나야만 했다.

한 많은 마의태자가 ‘시물’을 건너면서 마침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마의태자는 “천년 사직 문을 닫는데 누군가는 울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고는 정작 자신이 울었다.

하필이면 그는 ‘시물’을 건너면서 감정이 복받쳐 올랐던 모양이다. ‘시물’은 강이 이리저리 굽이쳐 흘러 이쪽 마을에서 저쪽 마을로 가려면 같은 강을 세 번이나 건너야 하는데 이 ‘세 번의 물(세물)’이 경상도 사투리로 ‘시물’이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에서 강 건너 이웃 용궁면 무이리로 가는 3km 안팎의 거리, 삼국시대 국도였던 이 길을 따라 가면 내성천을 세 번이나 건너게 된다. 망국의 강물을 세 번이나 건너려니 울음이 나올 법도 했겠다.

국민 관광지로 유명한 회룡포가 그 곳이다. 회룡포는 강물이 350도 회전한다. 딱 한 삽만 뜨면 그냥 섬이 돼 버릴 정도의 잘록한 산줄기가 360도의 원(圓)이 되는 걸 막았다.

회룡포 전경.

경주에서 출발한 마의태자는 이 강길을 울며 지나 문경 관음리로 향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 하늘재를 넘어 충주 미륵리로 갔다.

그가 떠난 자리, 필자는 회룡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비룡산(飛龍山) 회룡대 정자다. 가슴이 확 트인다. 우울하거나 갑갑해 하는 사람이라면 이 ‘자연의 묘약’이 속을 시원스레 뚫어줄 것 같다. ‘자연이 최고의 약’이다.

슬픈 역사의 전설이 서려있는 회룡포, 경치 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예쁜 애인이 품 안에 꼭 안기듯’한, 딱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산과 강과 모래사장, 농경지 그리고 마을이 그림 같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사계절 다른 색깔로 보면 더할 나위 없다.

오죽하면 LA 교민들이 단체여행 와서 ‘한국판 그랜드 캐년’이라고 했을까. 이국적이고 장엄한 그랜드 캐년하고 어찌 같을까 마는, 이 동양적 전원풍의 회룡포가 그 만큼 인상깊은 풍경을 주는 것 만은 사실이다. 지난 2005년 국가명승 제 16호로 지정됐다. 따지고 보면 이 아름다운 자연경치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건 불과 10년 안팎 밖에 안됐다.

태백산 아래 경북 봉화군에서 발원한 물이 120km 내리달려 내성천이라는 이름으로 회룡포를 휘감아 돈다. 조선 후기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은 이 내성천의 모래가 희다고 표현하며 관심을 보였다. 내성천은 모래톱이 많아 물의 자정능력이 뛰어나 깨끗하다.

회룡포 백사장, 회룡포오토캠핑장, 비룡산 오솔길, 회룡대(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회룡포에 도달한 내성천은 정확히 350도 회전한 후 다시 반대로 180도를 돌아 하류쪽 삼강주막으로 향한다. 직선으로 흐르면 뭔가 급해질 것 같아서 인가. 물을 천천히 흐르게 하기 위한 자연의 배려이자 무언의 가르침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내성천은 급할 것 없이 유유히 흘러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이 수려한 ‘곡선의 미’가 필자에게 다시금 ‘천천히’를 생각케 했다. 바쁘게 보면 ‘그냥 흐르는 강물’이고, 여유롭게 보면 ‘자연이 빚은 예술’이다.

‘회룡포 전도사’이신 박용성(73) 해설사 선생님은 회룡포를 “지형으로 보면 옛날 어르신들은 ‘산도 태극이요, 물도 태극이니, 산태극 수태극 천하명당 회룡포’라고 했다” 고 설명하신다.

하지만 350도나 돈 물길은 지맥을 약하게 했고 이로 인해 큰 인물이 못 난다고 한다. 인근 안동 하회마을 물길은 180도 회전해 서애 류성룡(柳成龍) 같은 인물을 배출한 반면 이 곳에서는 그와 비교된다는 얘기다. 실제 이 마을 출신들은 외지에 나가서 큰 벼슬을 한 사람은 없고 대신 상업에 종사해 부자가 된 사람은 많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정말 지형의 영향일까. 일단 의문표는 던지지만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회룡포 마을 모습.

회룡포(回龍浦) 지명 유래는 청룡과 황룡이 여기서 만나 하늘로 올라갔는데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모습을 빗대 회룡이라고 했다.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하지만 인근에 의성군이라는 지명이 있어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용의 마을. 이 주변에만도 ‘용(龍)’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10개나 된다. 용궁, 회룡포, 비룡산, 용포, 용포마을, 용두소, 용두지, 와룡산, 용암리, 용두정이다.

회룡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20년 전. 고종 때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한 명이 들어와 개간하면서 집성촌이 됐다. 신라가 멸망하면서 같은 김 씨인 마의태자가 경주에서 올라와 울며 지나간 곳을 1000년이 지나 경주 김씨 가문이 이 곳에 들어온 것은 우연일까. 참으로 묘한 일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회룡포 마을 건너편에 ‘하트(♥)’ 모양의 산이 있다. 이 산, 알고 보면 재밌다.

비룡산 회룡대에서 바라본 마을 건너편 '하트산'. 앞쪽 가운데 산이 완전한 하트 모양이다.

풍수로 보면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삼각형 산줄기는 총각산이고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여궁곡 형상의 산줄기는 처녀산을 상징하고 있는데 정말이지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산과 그 사이에 하트산이 자리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젊은 연인들이 비룡산의 정기를 받아 인연을 맺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백년해로 하고 훌륭한 자녀를 낳는다고 한다. 그러니 하트산에 적어도 ‘눈도장’ 꾹 찍는 것도 잊지말아야겠다.

‘사랑’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보자. ‘사랑의 자물쇠’가 또 있다. 자물쇠에는 ‘채우고 간직한다’는 의미가 있듯이 이 ‘사랑의 자물쇠’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며 이 곳 회룡대에 채우고 그 열쇠를 고이 간직하면 그들의 사랑이 영원토록 유지되고 결혼 후에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자물쇠를 걸어두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 영원히 변치말자는 약속의 증표다. 꼭꼭 잠궈두고 그 누구도 열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니 회룡포에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의 증표’를 꼭 챙기고 가자.

이 비룡산에는 ‘통일신라 3대 장안사’ 중 하나라고 하는 사찰이 하나 있다. 북쪽의 금강산, 남쪽의 부산과 함께 중간 지점인 이 곳에 비룡산 장안사가 있다. 이 절은 ‘용의 허리’로 상징되는데 이 회룡대에 오르면 곧 용의 허리춤에 올라 탄 것이다. 작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있는 사찰이다.

필자는 산을 내려와 약 3km쯤 떨어진 회룡포마을 입구로 향했다. 하천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재밌는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다. 공사장에서 쓰는 철판에 동그란 구멍이 일정하게 뚫린 강판으로 만든 ‘외나무다리’다. 엄밀히 말하자면 ‘외철판다리’다. 강물이 불어 구멍에 물이 차면 ‘퐁퐁’거렸다 해서 주민들이 ‘퐁퐁다리’라 불렀는데 서울의 언론사에서 ‘뿅뿅다리’로 잘못 표현하는 바람에 지금은 뿅뿅다리로 통용하게 됐다고 한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는 뿅뿅다리.
뿅뿅다리 데이트. 연인들의 이야기가 오래 머무를 시골스런 다리다.

이 뿅뿅다리는 필자에게 회룡포마을을 설명해주신 박용성 선생이 1997년 용궁면사무소 호병계장(지금의 민원계장) 시절 아이디어를 내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었는데 지금은 ‘대박’을 낸 다리가 됐다. 이곳이 제1뿅뿅다리이고 반대편에 제2뿅뿅다리가 또 있다. 박 선생님은 군대 3년을 뺀 70년을 이곳 향석리를 떠나 산 적이 없는 토박이 주민이시다.

마을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농촌풍경 그대로다. 농부는 밭을 갈고 한쪽에서는 파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주말을 맞아 외부 관광객들로 다소 왁자지껄 했다. 단체로 민박하는 사람들과 최근에 새로 생긴 오토캠핑장을 찾은 사람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 마을로 온 사람들은 모두가 ‘정든 사람’ 사이 같았다.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들(사진 위). 여행온 관광객들과 오토캠핑장 텐트촌 모습(사진 아래).

회룡포 총 면적은 49헥타르(15만평)로 농경지가 22헥타르(6만6550평)고 9세대가 살고 있다. 원래 마을은 뒤쪽 구릉지 쪽에 있었다. 70년대 새마을운동 전에는 내성천의 하상(河床)이 지금 보다 무려 5m나 높아 수해가 심했다고 한다. 하천이 지금 처럼 정비가 되고 범람이 없어 안전함을 확인한 주민들이 생활에 편리한 지금의 위치로 가옥을 옮겼다.

강바람을 쐬며 걸을 수 있는 올레길 2km(40~50분 소요)가 ‘아름다운 올레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개장한 오토캠핑장은 단번에 국내 10대 오토캠핑장이라 할 만큼 각광받고 있다. 입장료가 없는데다 각종 편의시설이 두루 갖춰져 있다. 예천군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멋진 경치를 모두 누릴 수 있는 특권이 공짜다.

저녁 노을에 비친 금빛물결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뿅뿅다리 주변에는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다문화 가족들이 모여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웃 개포면에서 왔다고 했다.

저녁놀 지는 내성천 뿅뿅다리.
농부가 자전거 탄 풍경은 곧 전원풍경이다.


작가 100인이 선정한 ‘가볼만한 곳’ 1위, 강변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사진작가가 가보고 싶은 100곳 등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마을이다.

강호동의 ‘1박2일’과 드라마 ‘가을동화’도 여기서 찍혔다.

이 곳에 오면 꼭 먹고 가야 할 맛집이 있다. 용궁면 소재지에서 용궁순대를 먹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몇 집이 성업해 왔지만 몇 년 전 TV ‘1박2일’에서 강호동이 먹은 후 일약 유명세를 탔다.

용궁순대는 막창으로 순대 만드는게 특징이다. 용궁면 소재지 중심로를 두고 양쪽으로 여러 집이 성업 중인데 대박순대집과 용선고향순대집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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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룡산 장안사 : 회룡포 전망대가 있는 이 비룡산에는 신라가 삼국통일 후 세웠다고 하는 장안사가 있다. 3대 장안사(長安寺) 중 하나다.

북쪽으로는 금강산의 장안사(용의 머리), 가운데는 이 비룡산의 장안사(용의 허리), 남쪽으로는 부산 불광산의 장안사(용의 꼬리)가 있다. 장안(長安)은 불교에서 ‘지상낙원’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지명에도 곳곳에 등장하는데 서울의 장안동과 중국 시안(西安)의 옛 지명 장안도 이 이름을 따왔다. 

비룡산 장안사.

이곳 장안사는 조계종 제 8교구 김천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지만 200년 전만해도 이 일대의 본사였을 만큼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경덕왕 16년(758년) 의상(義湘)대사 제자 운명(雲明)대사가 창건했다는 얘기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얘기가 함께 전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 비룡산 일대 등산코스 :

△ 1코스(총거리 10.7km 약 4시간) : 용주시비→회룡대→봉수대→원산성→범등→야외무대및광장→의자봉→적석봉→사림봉→사림재→용포마을→회룡포→용주시비

왼쪽 상류에서 내려온 내성천이 회룡포를 350도 휘감아 돈 후 다시 반대로 180도 돌아 하류로 내려간다.

△ 2코스(총거리 5.1km 약 1시간 45분) : 용주시비→회룡대→봉수대→용포대→사림재→용포마을→회룡포→용주시비

△ 3코스(총거리 10.1km 약 3시간) : 용주시비→회룡대→봉수대→용포대→원산성→성저마을→강변길→용주시비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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