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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청춘 못잖은 활력…꽃할배 · 꽃할매의 공연 한판
문화계엔 은퇴란 단어는 없다
이순재 · 박정자 · 손진책 등
문화계 전반 실버세대 급부상
체력만 받쳐주면 정년없는 활동
아마추어 실버극단도 증가세


요즘 취업난, 전세난에 허덕이는 20~40대를 웃기고 울리는 이는 ‘할배’ ‘할매’들이다. TV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속 네 명의 노배우 이순재(80), 신구(78), 박근형(74), 백일섭(70)은 화려하면서도 연륜을 느끼게 하는 입담으로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준다. 넷은 청춘보다 활기차다. 마치 나약하고 지친 현대 도시인에게 어서 기운차리라고 위로 공연 한 판을 벌이는 듯하다.

대중문화뿐 아니라 공연 등 문화계 전반에서 실버 세대의 부상은 올해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다. 배우, 연출 분야 다 그렇다. 찾는 이가 있고, 예술혼, 영감, 체력만 뒷받침되면 은퇴 없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문화예술계다. 사회 전체가 고령화하면서 문화계도 노화 속도를 높였다.

공연계에선 전문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60~70대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연극배우 손숙(69)은 자신의 데뷔 50주년 공연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를 대관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예술의전당서에서 28일까지 공연하며, 이어 9월과 11월에 각각 부평과 부산에서 ‘어머니’로 무대에 선다. 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장을 겸임하는 배우 박정자(71)는 4월 ‘안티고네’에서 신구와 함께 공연했고, 지난달부터 옴니버스 연극 ‘14인의 체홉’서도 간판급으로 출연하는 등 숨 가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극단 김금지 대표 김금지(71)도 이달 ‘성스러운 불꽃’서 주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영수(69)도 최근 마친 ‘배웅’에서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삶을 실감나게 연기해 호평받았고, 이순재, 전무송(72) 지난달 막내린 연극 ‘아버지’에서 주역을 연기하는 등 무대, 스크린,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66)은 지난달 한ㆍ일 합작 ‘아시아온천’을 선뵌 데 이어 내년 초 신작을 올릴 예정이다. 오태석(73)은 국악원이 아리랑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기념해 6월에 올린 소리극 ‘아리랑’의 각본과 연출을 맡아 건재를 과시했다. 홍대입구의 전설적 공연장 산울림소극장주 임영웅(77)은 지난 3월 아내 오증자 교수가 쓴 희곡 ‘나의 황홀한 실종기’를 연출해, 연극계 후배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

아마추어 연극 교실을 열면 은퇴자들의 호응이 가장 좋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문화계 주요 수요자이자 창작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송파실버인형극봉사단원들.

연극 연출가의 연령대는 역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헤럴드경제가 23일 한국연극연출가협회에 등록된 전체 회원(183명)을 분석한 결과 나이가 파악되는 148명 중 50대 이상이 89명으로 60%를 차지한다. 40대 54명, 50대 45명, 60대 30명 순이었고, 70대 이상도 14명이나 됐다. 하지만 20대는 전무했고, 30대는 5명뿐이었다. 36%로 가장 비중이 큰 40대가 허리를 떠받치고 있지만, 20~30대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 한 10년 뒤 연극계는 경로당이 될 판이다.

아마추어 실버 극단도 증가세다. 서울 중구의 중구구립실버뮤지컬단이 가장 유명하다. 65세 이상 10명으로 구성된 이 뮤지컬단은 2011년 거창실버연극제에서 금상, 연출상, 연기상을 받았고 매년 연말에 정기 공연을 올려 ‘준프로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강동아트센터도 지난 4월 시니어극단을 창단해 오는 10월 공연을 앞두고 있다.

다음달 9일부터 15일까지 강원도 춘천서 열리는 춘천인형극제의 아마추어인형극경연대회에는 실버 인형극단 8곳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서용선 춘천인형극장 사무국장은 “아마추어 경연 부문에 올해 34개 극단이 참가 신청을 했는데, 예년에 비해 대학교 유아 아동 관련 학과 동호회 참가는 줄고 실버 극단 참가는 늘었다”고 말했다.

실버층이 문화계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작품의 주제의식도 치매 등 노인문제, 죽음, 가족 간 갈등과 화해 등으로 넓어져 문화 다양성 측면에선 보다 풍성해졌다. 관객층도 20대 손자부터 중장년 부모세대, 70대 조부모 세대까지 아우르며 보다 두터워졌다. 하지만 그림자도 있다. 신진 연출가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젊은 세대가 뮤지컬이나 영화 등 대중적 장르를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극계의 열악한 처우 탓도 크다. 왕우리 한국공연예술센터 공연사업팀 프로듀서는 “연극 출신 배우들도 대중매체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경제적 이유 때문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지 못한다”며 “실제 무대에 서는 배우들도 10명 안팎으로 손에 꼽힐 정도로 극소수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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