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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사회적 동물…외로움 회피도 진화의 한 방식
외로울땐 뇌손상 등 파괴력 치명적
무한경쟁·이기적 유전자 대신
생존 위해선 사회적 유대 필요


외로움은 흔히 유약한 인간의 단순한 감정적 결함 정도로 이해될 뿐,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접목시켜 인간 이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사회신경과학의 창시자인 존 카치오포에 따르면, 외로움은 신체건강과 판단력 같은 뇌 기능을 손상시켜 사회적 성공에도 큰 장애가 된다.

즉, 자신이 사회에서 고립됐다고 만성적으로 느끼는 상태는 정서적 불안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면역력을 약화시키며 노화과정을 가속화한다. 10여년에 걸친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외로운 사람은 고혈압과 발병률이 37%나 더 높고 스트레스 수치는 무려 50%나 높다. 반면 사회적인 사람은 신진대사율이 37%나 높고 결정적으로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41% 낮다.

실체 없는 외로움이 어떻게 이토록 강력한 힘을 갖는 걸까.

카치오포 박사는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민음사)에서 인간은 외로움을 피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유대감이 충족될 때 기분이 좋을 뿐 아니라 안전하게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체적 위험을 피하는 것은 육체의 고통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의 고통 때문에 고립의 위험을 피하도록 진화했다. 인류의 조상은 서로간의 사회적 유대감에 의지해 안정을 도모했고 자신의 유전자를 전파할 수 있었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사회적 유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알고는 더 발전시키기 위해 유전자에 새겨넣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런 보호망이 손상되거나 사라졌을 때 빨리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면 사회적 유대감에 신경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끊어진 관계를 복구하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정밀한 두뇌와 수준 높은 사회성을 획득했다.

 
“외로움은 사회적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로 해결해야 한다. 인간관계는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의미 있고 만족스러워야 한다. (…) 인간관계는 반드시 상호적이라야 하며, 양측 모두에 비슷한 수준의 친밀도와 강도가 필요하다.” (본문 중)

다른 생물도 사회를 구성하고 흰개미집 같은 미로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인간만이 가능하다. 맹목적인 생존기술을 보여주는 파충류의 뇌에서부터 신포유류 뇌까지 오랜 진화의 흔적을 모두 갖고 있는 인간의 뇌가 바로 그 증거로 제시된다. 인간 고유의 복잡한 인지와 반응 시스템은 외로움을 극복하여 고도의 사회를 구성하는 데 최적화된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인간에 대한 이해는 달라졌다. 개인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됐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에인 랜드의 ‘이기심의 미덕’부터 밀턴 프리드먼의 ‘무한경쟁의 시장’,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강한 개인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만 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이롭지 않다. 저자는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진보는 유전자가 이기심을 극복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외로움이 중요할까. 저자는 현대의 온갖 질병과 사회 이상현상이 근대 이후 모든 것의 잣대로서 개인에 초점을 맞춰온 문화에 있다고 보는 듯하다.

유대감이 떨어진 외로움은 사회인지와 자기조절 능력을 손상시키며 악순환을 그린다. 가령 혼자 있는 데서 고통이나 두려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어떠한 사회적 환경에서든 위협을 느낀다. 외로운 사회인지의 렌즈를 통해 보면 다른 사람들이 더욱 비판적이고 경쟁심이 강하며 자신을 헐뜯거나 아니면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이런 해석은 곧바로 공격을 물리치려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며 뒤틀린 판단으로 이끌고 공격적인 행동이나 자기 비하로 몰고간다. 저자는 외로운 사람이 자기 삶의 제어력을 되찾도록 하는 데는 약간의 격려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의 대안은 외로움의 참된 기능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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