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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 코드네임엔 달콤한(?) 비밀이…
젤리빈·키라임파이 등 친근한 먹거리에 알파벳 순서로 이름 붙여…매킨토시는 고양이과 동물로, MS는 美지명으로 차별화
때로는 비밀스러운 군사작전의 이름으로, 때로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첩보요원의 상징으로 대중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왔던 ‘암호명(코드네임)’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제 코드네임은 더이상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한 화장품 회사의 ‘갈색병 에센스’처럼, 또 주부 사이에서 ‘원빈밥솥’으로 통하는 어느 가전회사의 첨단 밥솥처럼 코드네임은 자사의 제품을 친근하게 알리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됐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IT 제품이 있다.

▶코드네임 ‘비밀’을 벗고 ‘친근함’을 입다=2011년 5월 1일, 전 세계의 이목은 한 마디의 짧은 ‘이름’에 집중됐다. ‘Geronimo E-KIA(제로니모, 적 사살)’.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두목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암호였다. ‘제로니모’는 빈 라덴을 가리키는 미 정부의 코드네임. 신출귀몰한 행보로 미군을 농락했던 전설적인 인디언 아파치족 추장의 이름이 모체가 됐다.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코드네임은 이 외에도 많다. 1965년 ‘살인번호’에서 시작해 2012년 ‘스카이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팬을 만들어낸 ‘007시리즈’의 중심에도 코드네임이 있었다. 영화상에서 007은 정부가 보증한 살인면허(licence to kill)를 가진 영국 첩보원의 코드네임으로 그 실존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가까이 할 수 없어 더 매력적’이었던 코드네임이 비밀스러움을 벗어던지고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IT 제품에서부터다. 우리가 흔히 컴퓨터 모델명으로 알고 있는 ‘286’ ‘386’ 등의 중앙처리장치(CPU) 코드네임이 그 시초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 컴퓨터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할 때 인텔에서 개발한 CPU 코드네임 80286(1982년), 80386(1985년), 80486(1989년)을 줄여 부르던 것이 마치 제품의 이름처럼 통용되면서 대중도 코드네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물부터 먹거리까지 자기만의 특색 담은 코드네임들=이렇게 1980년대 초반부터 그 존재를 드러낸 IT 제품의 코드네임은 이후 품목별ㆍ제조사별로 각기 다른 특성을 드러내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컴퓨터 운영체제(OS)의 독보적인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는 제품 코드네임에 미국의 지명을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윈도 대중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95버전은 개발과정에서 ‘시카고’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렸다. 98(멤피스), XP(휘슬러), Vista(롱혼)의 코드네임 역시 모두 미국의 지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4년 야심차게 준비한 비스타의 코드네임을 공개하며 ‘롱혼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주제로 대대적인 베타버전 공개행사를 열기도 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사용자에게 사랑받는 애플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는 개성 강한 하드웨어의 외관만큼이나 독특한 코드네임을 자랑한다. 매킨토시 운영체제 코드네임에는 대대로 ‘고양이과 동물’의 이름이 사용됐다. 가장 먼저 등장한 맥 OS X 10.0의 코드네임은 ‘치타’. 그 뒤를 이어 버전마다 퓨마, 재규어, 팬더(검은 표범), 타이거, 레오파드, 스노 레오파드, 마운틴 라이언 등의 코드네임이 붙여졌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애플이 이런 카리스마 있는 코드네임을 10.2 버전(재규어)부터 마케팅에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때부터 맥 OS 제품 패키지에는 두 눈을 부릅뜬 고양이과 동물의 사진이 빠짐없이 들어간다.

달콤한 먹거리를 코드네임으로 사용해 여심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구글은 자신이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에 ‘음식’으로 코드네임을 붙인다. 최신 버전인 안드로이드 4.3의 코드네임은 ‘젤리빈’. 현재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차기 안드로이드 5.0의 코드네임은 ‘키라임파이’다. 다만 구글의 코드네임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A부터 Z까지 알파벳 순서를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 이에 따라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A(애플소스), B(비스코티ㆍ이탈리아식 과자), C(컵케이크), D(도넛), E(에클레어ㆍ프랑스식 과자), F(프로즌 요거트), G(진저브레드), H(허니콤ㆍ벌집 모양의 시리얼), I(아이스크림 샌드위치) 등의 코드네임을 순서대로 붙여왔다.

▶코드네임 ‘서울’ ‘강남’을 꿈꾸며=코드네임의 대중화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의 도시가 외국 회사 IT 제품의 코드네임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인텔과 함께 세계 CPU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AMD는 지난해 발표한 차기 제품 로드맵에서 ‘서울’이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CPU를 2013년까지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내 등장할 서울 프로세서는 발렌시아, 취리히, 델리, 아부다비 등의 코드네임이 붙여진 다른 제품과 함께 AMD 차세대 제품군의 한 축을 담당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컴퓨터 마니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CPU 제품군이 전 세계에 공급되는만큼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의 인지도도 한층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한 발 더 나아가 누리꾼은 “우리나라가 IT 기술에서 첨단을 달리는 만큼 현재 개발 중인 각종 전자제품이나 부품에 직접 한국적인 코드네임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 누가 알겠는가. 혹시 삼성이 만드는 차기 모바일 칩셋에 ‘부산’ ‘광주’ 같은 코드네임이 붙게 될지. 그때는 “삼성전자의 코드네임 ‘제주도’, 세계 최초 데카코어(코어가 열 개인 칩셋) 등장”이라는 기사가 포털사이트를 뒤덮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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