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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채동욱 사태를 읽는 마술적 리얼리즘
사표는 서초동과 종로의 중간쯤에 있다. 만신창이라도 살아서만 돌아오라는 건가. 현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이 황당할 정도로 뒤섞여 있는 채동욱사태를 해석하려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도 동원해야 할 듯하다.


혼외아들이 사실이냐, 아니냐. 국가적 관심사가 됐다. 공직자의 윤리와 도덕성 검증이라고. 웬걸.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해 유희를 즐길 만큼 검찰총장은 가벼운, 하찮은 직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청와대와 정부, 언론은 공범이다.

검찰청 수장을 ‘청장’이라 하지 않고 ‘총장’이라고 부른다. 일제 조선총독부의 통제아래 ‘대법원 검사국 검사총장’이라는 직책의 ‘총장’이 해방과 권위주의 철폐의 시대를 지나서도 고쳐지지 않은 까닭이 있다. 검찰청은 수사와 법 적용, 유무죄를 판단하고 구형량을 독립된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개개 검사들의 총합이다. 검사동일체(Grundsatz der Einheitlichkeit der Staatsanwaltschaft)원칙에 따라 상명하복의 통일된 검찰조직의 정점에 검찰총장이 있다. 검찰총장은 곧 검찰이고, 공권력의 상징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고, 수리되지 않자 14일째 출근거부 투쟁 중이다. 법무부는 수족을 묶고 사상초유의 감찰을 벌이고 있다. 채 총장과 언론사 간 정정보도 청구소송은 3개월 정도 걸린다. 사실무근으로 밝혀져도 채 총장은 총장직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잘못이 없으면 그대로 직무를 수행하라고 하고 있다. 사표는 서초동과 종로의 중간쯤에 있다. 만신창이라도 살아서만 돌아오라. 전쟁영화의 한 장면인가. 현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이 황당할 정도로 뒤섞여 있는 채동욱사태를 해석하려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도 동원해야 할 듯하다. 사생활 문제로 나라가 뒤숭숭할 만큼, 뻔한 결론을 몇 개월씩 유예할 만큼 국정운영이 만만한 모양이다.

의혹에 따르면 문제의 여성이 혼외 아들을 낳았다는 시점은 2002년이다. 징계는 사유가 있는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이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검사징계법을 규정하고 있다. 의혹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징계 청구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감찰을 통한 도덕성 검증은 포장에 불과할 뿐, 본질은 권력기관을 국가주의 프레임으로 정렬시키려는 시도로 의심받는다. 사퇴압박설이 파다했었다.

의혹을 덮고 가자는 게 아니다. 직무와 관련한 비위가 아니다. 사생활 문제인 만큼, 검찰총장이 아닌 사인(私人)으로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는 게 맞다. 법조는 한통속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재판부의 부담을 덜어줘야 실체적 진실규명도 쉽고 뒷말도 방지할 수 있다. 채 총장의 사표수리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검찰총장은 채동욱 개인의 자리가 아니듯, 국정 전체를 놓고 오기 싸움을 벌일 자리도 아니다. 검찰조직의 안정, 최소한의 자존심도 고려해야 한다. 선배들이 후배검사에게 하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는다”, “무사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호랑이를 들개로, 무사를 산적으로 만들어야 정권의 체면이 살까. 검사의 기개가 꺾이면, 국가기강도 무참해진다. 정권핵심에 유난히 검찰 출신이 많다. 1988년 검찰총장에 오른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사시 18회), 황교안 법무장관(23회)은 채 총장(24회)의 하늘같은 선배들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jpur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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