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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 - 강우현> 역지사지 살아있나?
시월은 문화의 달, 전국 각지에서 수천 개의 축제와 지역 문화행사가 열린다. 행사를 망치는 줄 알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식행사 프로그램이다. 외교관들은 코리안 스타일이라 부르며‘ 피식!’ 웃는다.


얼마 전 남이섬에 새로운 명물을 하나 만들었다. 소원의 연못, 작은 연못 한가운데에 돌그릇과 옹기를 포개놓고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져 넣게 했다. 만들어지자마자 많은 손님이 동전을 던지며 즐거워했다. 다음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누군가 동전 대신 돌멩이를 던져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아닌데?’ 순식간에 항아리 속에는 돌멩이들이 쌓여갔다. 금이 가기 시작한 두꺼운 옹기는 깨지기 직전, 이걸 만드느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땀을 흘렸는데? 속이 상했다. 하지만 소원을 담아 던질 동전이 없는 아빠, 아이에게 자신의 조준실력을 얼마나 뽐내고 싶었을까? 다음날 아침, 작은 나무 표지판을 만들어 세웠다. ‘어린이가 항아리에 돌을 넣지 않게 지도해 주세요.’ 그 후부터 돌멩이를 던지는 일이 없어졌다. 손님들은 다시 차분하게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어린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이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복지세금이나 ‘갑과 을’, 노사관계, 남북관계, 교육과 가족관계 등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세상의 혼란과 갈등도 줄어들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이 요새 맥을 못 추고 있다.

외국인들이 코웃음 치는 ‘코리안 스타일’.

시월은 문화의 달, 한 달 동안 전국 각지에서 수천 개의 축제와 지역 문화행사가 열린다. 행사를 망치는 줄 알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식행사 프로그램이다. 온갖 직책들을 망라하는 참석자 소개가 끝나면 고관대작들의 환영사와 축사, 격려사들이 40, 50분, 심지어 한 시간을 넘기는 사례도 허다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숟가락만 들고 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행사가 끝날 즈음이면 객석은 절반 이상 비어 있다. 외교관까지 초청해 놓고 잠깐 소개를 하지만, 통역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끝나는 개막 행사들, 외교관들은 코리안 스타일이라 부르며 ‘피식!’ 웃는다.

역지사지는 소통의 기본이다. 전국에 관광지는 많은데 관광객이 없다고 한다. 국민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은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손님들의 지갑을 노리는 관광지들, 하지만 손님들은 지갑을 털릴까봐 호주머니 단추를 꽁꽁 채우고 다닌다.

시각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는 ‘대비와 균형’이다. 포스터 한 장을 디자인할 때도 흑과 백, 위아래, 높낮이, 크고 작음 등등 서로 대비되는 요소들을 조절하면서 시각적으로 안정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진하거나 밝은 무수한 회색의 계조를 이용하여 때로는 흑색을 바탕에 쓰기도 하고 그 반대를 쓰기도 한다. 어느 색이 바탕색이 되건 대세에 영향은 없다. 검정 바탕에는 백색 글자, 백색바탕에는 흑색 글자를 넣어 조절하면 그만이다. 소통이나 탕평과 같은 세속의 단어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

노랑과 파랑을 섞으면 초록, 빨강과 파랑으로 보라, 빨강과 노랑은 주황색을 만든다. 순색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중간색의 계조가 없이는 깊은 맛을 내기 어렵다. 서로 대비되는 상상 속에서 상대방을 끌어안을 수 있는 역지사지의 지혜, 디자인에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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