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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척가’의 그녀에 반한 루마니아 연출가, “소외효과에 ‘소리꾼’ 제격”
“이 아저씨 정말 짱인거 같아요. 머리 속에 그림이 다 그려져 있어요. 내가 왜 그 대목에서 걸어야하는지. 내공과 깊이를 알수 있죠. 그래서 탄복해요.”

젊은 국악계 ‘슈퍼스타’ 이자람(34)이 엄지를 세워 높이 치켜 들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인근 식당에서 이자람 앞에 앉은 ‘삼촌뻘’ 루마니아 연출가 가보 톰파(56)는 이미 한국서도 명성을 쌓았다. 클루지 헝가리안 씨어터 예술감독인 그는 4월 내한 공연한 ‘크라이스 앤 위스퍼스’의 제작자이자, 2011년 내한 공연한 ‘리차드3세’ 연출가다. 이자람과 톰파는 예술의전당이 게오르크 뷔히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올리는 연극 ‘당통의 죽음’에서 연출과 배우로 만났다.

독일 극작가 뷔허너의 대표작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공포정치에 맞서 질서 재건을 외친 당통, 당대의 지성 카미유 등의 논쟁이 압권인 작품이다. 외설적이며 기층민의 일상어를 써 1835년 출간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억압받는 군중을 그들의 일상어로 그리고, 당시로선 매우 현대적인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브레히트 원작소설을 판소리극으로 바꾼 이자람의 ‘사천가’ ‘억척가’에서 유사점을 발견한 것일까. ‘당통의 죽음’을 처음 연출하는 톰파는 소리꾼 이자람을 이 공연에 끌어 들였다.
‘당통의 죽음’으로 처음 함께 작업하는 이자람과 가보 톰파는 영락없이 조카와 삼촌 사이로 보인다. 나이, 국적, 성(性), 장르, 전공분야는 모두 다르지만, 새로움에 이끌리고 호기심 충만한 예술가적 기질은 서로 ‘같은 과’ 임을 한 눈에 알아 챘다.
[사진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톰파는 이자람의 팬이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본 ‘억척가’에 감동 받아 직접 루마니아 인터피리언스축제에 ‘억척가’를 초청한 장본인. “브레히트의 잘 알려진 스토리(‘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전통적 형식을 담은, 굉장히 놀라운 조합을 발견했어요. 신구(新舊)가 동시에 있는 게 연극에선 자주 일어나지 않는데, 한국의 정체성을 찾으면서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었죠. 굉장히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년 인터피리언스축제에는 ‘사천가’를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이자람을 위해 원작에 없는 배역이 설정됐다. 1인 다역을 하는 판소리 형식에 흥미를 느낀 톰파가 원작의 등장인물 30명을 14명으로 축소하고, 대신 ‘거리 광대’를 집어 넣었다. 이자람은 해설자인 광대와 극 중 시민1~7, 군중, 군인, 거지, 창녀, 시몽 아내 등 여러 역할을 소화한다. 톰파는 “광대는 ‘역사의 천사’같은 역할이다. 시간을 연결해 과거로 가고 해설한다. ‘억척가’의 서사적(해설적)인 스타일에 매료됐는데, 거리감이나 소외효과에 흥미를 느꼈다. 이번 작품에선 극적 장면에 대한 광대의 해설로 소외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이자람에게 정극 데뷔 무대나 다름없다. “제가 공연에 출연하다니까, 걸쭉한 소리를 기대할 텐데, 그걸 넘어서는 그림을 고민했어요. 얼마나 부담스러운 지 몰라요.” 말과는 달리 얼굴은 매우 신명이 올랐다. “친구가 저를 보고 최근 가장 신선해보인다라고 해요. 우매한 군중을 표현하기 위해 혼자 ‘지랄’하는 장면도 있어요. 몸을 엄청 쓰기도 하고요.”


공연에는 북, 징, 꽹가리 등 사물이 쓰인다. 하지만 공연에 한국 전통 색깔을 입혔다기 보다 소리의 형식을 빌어 군중의 힘을 보여주는 정도로 활용된다. “부채는 너무 촌스럽다. 부채 없이 가자”고 연출과 배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합심해 소리꾼의 오랜 무대 매너도 버렸다.

톰파는 “우리 모두가 다 데뷔다. ‘당통의 죽음’ 연출은 내게 처음이고, 한국 배우와의 작업도 처음이다. 박지일(당통 역) 배우는 헝가리어를 쓰는 연출과는 처음이다. 데뷔는 몰랐던 것에 대한 호기심, 자극과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톰파는 또 원작의 주제에 대해 “프랑스 혁명의 정치 슬로건이 자유와 평등, 박애인데 혁명 이후 정말로 우리는 자유를 확인했다. 하지만 평등은 그 보다 작게 확인했고, 박애는 거의 없었다. 혁명기에는 자유와 평화를 외치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권력 투쟁이 있다. 우정, 죽음, 사랑, 배신, 외로움, 광기, 권력 투쟁 등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빅토르 위고 등 다른 작가의 프랑스 혁명 관련 책이 있지만 뷔히너는 다르다. 시간이 지난 뒤에 집필해서 역사적 사건을 더 명백하게 바라봤다”고 덧붙였다.


톰파는 공연에 앞서 “굉장히 흥분된다”면서 “무대를 통해 인간이 경험한 것에 대한 힘을 느낄 수 있다. 한국 관객의 반응은 ‘무관심’ 빼곤 다 괜찮다”고 말했다.

‘당통의 죽음’은 다음달 3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박지일, 윤상화, 문형주, 최지영, 서광일, 임진웅 등이 출연한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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