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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여가문화를 만드는 사람-이종용 ES리조트 사장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이종용(71) 이에스리조트클럽 사장은 한마디로 ‘괴짜’다. 하지만 ‘철학이 있는 괴짜’다. 그의 고집과 집념이 우리의 새로운 여가문화를 만드는 데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항상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이 사장을 기자가 처음 만난 건 충북 제천에 별장형 휴양지를 짓고 있던 1995년이다. 그는 ES리조트의 개념에 대해 열정을 다해 설명했다. 기자는 열심히 해보시라고 말했지만 현장에서 기자가 받은 느낌은 ‘그리 쉽지 않겠다’였다. 당시만 해도 충북 제천 청풍대교를 지나 ES리조트가 자리 잡은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자락은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저런 곳에 멤버십 유럽풍 별장식 휴양촌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기우였다.

의사ㆍ변호사ㆍ교수ㆍ연예인 등 전문직 종사자를 비롯해 개인적인 취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이 모여서 ‘건전한 일탈’을 즐기려는 여가욕구를 이 사장이 재빨리 수용한 것이다. 이후 펜션과 콘도가 계속 생겨도 ES리조트의 독자적인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회원권 판매가 문제가 되지 않은 것도 물론이다.

이종용 ES리조트 사장은 “오랜 기간 여행을 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가까이하며 조화롭게 지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리조트는 자연 친화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문화의 동력은 ‘결핍’에서 구해진다고 했던가. 여행의 성패를 결정 짓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 숙소의 기존 형태를 한 번 보자. 오랫동안 국내 여행의 숙소로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 형태의 리조트 콘도들이 즐겨 이용돼왔다. 휴가철에는 많은 사람이 붐빌 수밖에 없어 호젓하게 즐기기는 어렵다. 이런 리조트 콘도형 숙소의 단점을 해결해주기 위해 등장한 펜션은 지방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바람에 이제는 너무나 흔한 숙소가 돼버렸다. 천차만별인 펜션 중에서 여행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장은 아파트형 콘도와 펜션의 단점들을 모두 해소해주는 휴양촌 건립을 생각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입니다. 유럽을 혼자 여행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방을 혼자 여행하며 산속에 그림같이 묻혀 있는 ‘샬레(통나무집)’를 보며 많은 걸 생각했어요. 우리는 환경과 건축이 따로 놀잖아요. 이런 숙소에서는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아요. 자연과 잘 어우러진 집에서 하루를 지내면 편안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1995년에 산악형 휴양지인 제천ES리조트를 만들었고, 2010년엔 ‘한국의 나폴리’라 할 수 있는 통영 바닷가에 통영ES리조트를 조성했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을 활용한 ‘누각식 경사 개발법’을 채택했다. 건축물이 수목의 높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층수를 제한해 자연보다 경관이 더 아름다워졌다. 그는 제천ES를 지을 때 리조트가 산을 가리지 않고 나무나 바위를 최대한 원상 그대로 둘 것을 고집했다. 발코니에 큰 소나무가 뻗어 있는 숙소도 있다.

이탈리아의 중부 휴양섬 샤르데니아 리조트를 모티브로 해 영화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리프가 운영하는 그리스 섬의 낭만적이고 조그만 리조트호텔 분위기를 자아내는 통영리조트에는 직선이 없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잖아요”라고 말한다. 찌그러진 창문, 아치형 구름다리, 구부러진 지붕 곡선 등 모두 자연에 순응하는 곡선으로 처리해 탈도시화ㆍ탈문명적 느낌을 주며 눈의 피로도를 줄였다.


“자연 친화적인 리조트를 가볍게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립니다. 사색하기에도 안성맞춤이죠. 걷다 보면 오리ㆍ토종닭ㆍ토끼가 뛰노는 게 보입니다.”

리조트 이름에 왜 굳이 ‘환경’을 붙였는지 이해가 됐다.(ES리조트의 E는 Environment의 약자. 문의 02-508-2329) 자신을 ‘ES리조트 촌장(村長)‘이라고 밝힌 이 시장은 리조트업계의 이단아다. 경북 칠곡 태생인 그가 리조트업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섬유업체를 경영하며 능강계곡에 부지 46만여㎡를 헐값에 사놓은 게 충주호가 생겨 그림 같은 풍광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콘도를 지은 게 아니다. 예술가와 개인 사업자 등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휴양지 건설에 대해 연구했다. 나중에는 혼자서 한 달간 10회 넘게 여행하기도 했다. 10년간 철저하게 R&D(연구ㆍ개발)에 나섰다.

“디지털카메라를 3대 들고 다녔는데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남부의 산비탈에 자연 훼손 없이 지은 집들을 보고 사실 감동받았어요. 이탈리아 반도, 스페인 반도 사람들이 감정이 풍부한 점 등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10년 넘게 R&D를 거쳐 ES리조트를 지은 이 사장은 “삶의 색깔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이 사장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꼬장꼬장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에서 제천ES 투숙을 요청했지만 회원제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 회장도 직접 찾아와 제휴하자는 제의를 모두 뿌리쳤다. 리조트 내 수영장에서 야한 수영복을 입은 여자 손님을 쫓아낸 적도 있다.

“대기업에서 뛰어들기 힘듭니다. 대기업은 큰돈을 투자해도 큰 수익이 나지 않으면 흥미를 보이지 않죠. 돈을 벌려면 회원제로 분양한 후 비회원을 받으면 되는데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통영ES는 국립공원법에 묶여 어쩔 수 없이 비회원을 일부 받고 있습니다.”

이 사장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작은 집’을 짓겠다는 고집과 괴짜 정신으로 부지 넓이에 비해 동수가 많지 않아 큰 매출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특화된 시장에서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S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와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세요”라고 말한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바지는 1만5000원, 스웨터는 비싼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몇 년 전 암에 걸렸지만 완전히 극복했다. 이 사장은 기자와 헤어질 때쯤 욕을 했다. 직원한테 물었더니 욕을 하는 건 친하다는 증거라고 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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