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작 ‘미국인(The Americans)’시리즈로 세계 사진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로버트 프랭크(89)의 오리지널 사진이 한국에 왔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올해 마지막 전시로 ‘현대사진사의 거장’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을 마련했다. 전시에는 ‘주관적 다큐멘터리’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랭크의 원판사진 115점이 내걸렸다. 작품은 스위스의 빈터투어사진미술관 소장품으로, 그간 국내에서 한두 점씩만 봐왔던 작가의 오리지널 사진이 100여점 넘게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스위스 출신의 로버트 프랭크는 ‘현대사진사는 로버트 프랭크와 함께 시작됐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사진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던 혁명가다.

특히 대표작인 ‘미국인’(1958) 시리즈는 전쟁 후 자만심에 부풀어 있던 미국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직시해 파장이 컸다. 노출과 구도, 포커스를 제대로 맞추지 않은 인물들은 기형적으로 표현되거나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강력한 정치·사회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는 독자적 시각으로 미국인들의 적나라한 일상을 기록했다. 

한미사진미술관 내년 2월까지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 로버트 프랭크의 대표작 ‘City Fathers’. 시(市) 원로들을 다른 시선으로 잡은 사진이다. Hoboken, 1955 ⓒRobert Frank [사진제공=한미사진미술관]

이를테면 그의 ‘미국인’ 시리즈 중 ‘City Fathers’는 뉴저지 호보켄이라는 작은 마을의 행사에 참석한 원로들을 정면이 아닌, 엉뚱한 시선으로 잡은 작품이다. 정장을 빼어입고 근엄한 모습으로 연단에 선 인사들은 마치 꼭두극 속 인형처럼 보인다. 우측 끝사람은 누구와 입맞춤이라도 할 듯한 기세다. 또 다른 대표작인 ‘Trolley’도 범상치 않다. 인종차별의 잔재가 여전하던 1956년, 남부 뉴올리언스를 달리던 기차를 찍은 이 사진은 앞열 및 후미열로 구분돼 여행길에 오른 백인과 흑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부유한 스위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젊은 시절 취리히, 바젤에서 도제식으로 사진을 배웠다.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남아메리카와 유럽을 여행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리곤 미국 구겐하임재단 지원으로 1955, 56년 미국 전역을 돌며 2만여 점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 83점을 추려 1958년 프랑스에서 펴낸 책이 저 유명한 ‘미국인’이다. 이 책은 이듬해 미국서도 출간돼 집중포화를 받았다. 전쟁승리 후 애국심과 낙관주의에 빠진 미국을 적나라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고난 대로 솔직하게, 눈이 아닌 가슴으로 대상의 실체를 담으려 했던 프랭크의 파격적인 사진은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의 또 다른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미국인’ 작품집은 사진집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미국인’ 이후 딸을 비극적으로 잃은 이후 작가는 더욱 반역적인 작가가 됐다. 추상과 현실이 뒤섞인 영화를 제작했고, 1970년대 초에는 포토몽타주 작업도 시도했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인 ‘미국인’ 연작과 함께 유럽을 돌며 찍은 사진, 포토몽타주가 망라됐다. 전시에 발맞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사진집도 발간됐다. 내년 2월 9일까지. 성인 6000원. (02)418-1315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