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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아파트 닮은 주상복합이 늘어난다는 데…왜?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요즘 아파트 분양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주상복합 공급이 많다는 겁니다. 올 한 해 동안 1만5000여가구가 분양돼 2007년 이후 공급량이 가장 많다고 하네요.

주상복합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고급 주택의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목동 하이페리온 등은 부유층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컸죠. 주로 도심에 초고층으로 지어져 조망권이 탁월하고, 고급 내장재를 갖춘 데다 보안이 잘 돼 있어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의 전문직이 선호하는 주택으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금융위기가 몰아친 2008년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죠. 대형이 많고, 분양가가 일반 아파트보다 비쌌기 때문에 시세 하락폭이 컸습니다.

부동산 경기 전망이 비교적 좋았던 2005~2007년 공급이 많이 됐는데 2008년 이후 입주시점에 경기 침체가 본격화해 낭패를 보는 단지가 많았습니다. 입주하자마자 분양가 밑으로 떨어지는 단지가 수두룩했죠.

2011년 10월 입주를 시작한 중구 회현동 남산롯데캐슬아이리스가 대표적입니다. 이 아파트 184㎡형은 13억원에 분양됐지만 현재 10억7000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경매시장에선 타워팰리스 등 강남의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반값에 낙찰되는 사례도 속출했습니다. 중국집 배달원도 접근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1%를 위한 집이란 아우라가 강했는데 민망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주택 침체기엔 주상복합 아파트의 인기가 회복되긴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시세 하락폭이 커지자 주상복합 아파트의 단점이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주상복합은 기본적으로 전용면적이 일반아파트보다 작습니다. 일반 아파트가 공급면적 대비 실제로 사용하는 실내공간인 전용면적 비율(전용률)이 80% 수준인데 주상복합의 전용률은 60% 수준에 머뭅니다. 초고층 건물로 지어져 집 한가운데 커다란 기둥이 있어 공간 활용이 잘 안되는 단점도 있죠.

주상복합은 설계상 외부에 창문을 내기도 어렵습니다. 통풍과 환기, 단열 등이 좋지 않겠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어컨, 환풍기 등 가동해야하는 시설이 많아 관리비도 일반 아파트에 비해 많습니다. 타워팰리스가 바로 옆 도곡렉슬에 비해 면적당 두 배 이상 관리비가 더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길게 봤을 때 재건축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미 용적률을 쓸 만큼 써 층수를 높였기 때문에 나중에 더 높이 지을 수 없습니다. 건물의 연한이 지나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할 때 만만치 않겠죠.

이런 단점들이 알려지면서 주상복합의 시대는 저무는 것 같았습니다. 주상복합을 찾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었고, 분양을 하면 대부분 미분양으로 남았습니다. 2007년 2만가구가 넘게 공급되던 게 2011년엔 5000여가구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주상복합이 올해 다시 본격적으로 분양을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주상복합이 과거의 것과는 좀 다릅니다. 일반 아파트의 모습을 한 주상복합입니다.

우선 과거 대형 위주였던 데서 전용 85㎡ 이하 중소형이 많아졌습니다. 삼성물산이 15일 견본주택을 열고 분양을 시작하는 서울 강동구 ‘래미안 강동팰리스’는 펜트하우스 12가구를 제외하고 987가구가 모두 전용면적 84㎡이하 크기입니다. 롯데건설이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짓는 ‘롯데캐슬 골드파크’도 1743가구 중 전용 59~84㎡가 1638가구나 됩니다. 대우건설이 송파구 문정동에 공급하는 ‘송파 파크 하비오’도 총 999가구 중 919가구가 전용 84㎡ 크기고요.

전용률도 일반 아파트 수준인 80%까지 높였습니다. 현대산업개발이 위례신도시에 짓는 ‘위례 아이파크’의 전용률은 78%입니다. 천안 불당 트윈팰리스의 전용률은 81%나 됩니다. 전용률을 높아지니 내부 공간이 일반 아파트처럼 넓게 느껴지겠죠.

설계도 과거엔 세련된 ‘타워형’이란 점을 강조했지만 요즘은 통풍과 채광이 좋고, 실용성을 강조한 ‘판상형’을 내세우는 곳이 많습니다. 외향 자체가 일반 아파트처럼 보이는 겁니다.

저층에 아예 상가를 없앤 단지도 나옵니다. 주거와 상가 시설이 함께 들어가는 주상복합의 기본 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겁니다. 래미안 강동팰리스는 대부분의 상가를 별동으로 지어지는 오피스 건물에 배치했고, 주거동에는 상가를 거의 없앴습니다. 위례신도시에 들어가는 ‘송파 와이즈 더샵’도 주거동만 놓고 보면 일반 아파트와 차이가 없습니다. 대신 전면에 스트리트형 상가를 따로 조성해 상가를 분리했습니다. 

이름도 바꿉니다. 일반 아파트 브랜드를 쓰면서 주상복합이라는 것을 숨깁니다. 과거엔 주상복합은 타워팰리스, 하이페리온 등처럼 별도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일반 아파트 브랜드를 붙입니다. ‘위례2차 아이파크’, ‘송파 힐스테이트’ ‘마포 한강2차 푸르지오’ ‘용산전면3구역 래미안’, ‘강동 신동아 파밀리에’ 등으로 브랜드만 봐서는 일반 아파트인지 주상복합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 기존 주상복합의 이미지를 지우는 게 요즘 주상복합인 셈입니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이런 변화가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다만 주상복합 아파트가 보통 도심이나 교통 여건이 좋은 곳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변신이 실수요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가능성은 큰 것 같습니다. 기존 주상복합의 편의성과 고급스러움은 유지하면서 실속을 챙기니 말입니다. 관심있게 지켜볼 만한 트렌드인건 분명합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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