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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바보 신부/이해준 문화부장
스스로 바보라 부르며 한없이 자신을 낮춤으로써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더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서도 세상을 울렸던 사람. 증오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대립과 갈등보다는 화합과 화해를 앞세워 실천함으로써 암울한 시대의 등불이 되었던 사람. 2009년 87세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다.

그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편이었다.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고초를 치르는 사람들의 벗이요, 민주화 투쟁의 정신적 지주였다. 폭력과 억압, 강요에 의한 질서는 거짓된 질서요 거짓평화라고 독재를 경고했다.

김 추기경은 그러면서도 사랑과 용서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실천했다 그에게 독재정권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적과 아군이 따로 없었고, 핍박받는 민중을 걱정하듯이 탐욕에 사로잡힌 권력자들도 걱정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 포용력이 없으면 국민이라도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일깨웠다.

박현구 기자 phko@heraldcorp.com

때문에 그는 종교와 이념, 정파를 떠나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들도 어려울 때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국민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분열로 가는 사회를 사랑으로 통합시킨 시대의 큰 어른이자 스승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박창신 신부가 최근 시국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연평도 포격도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듯한 발언을 놓고 세상이 갈갈이 찢어지는 오늘날, 시대의 어둠을 밝혀줄 바보 추기경이 그립다. 네탓 하지 말고 내 탓하라고 가르쳤던 바보 추기경의 유언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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