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경제광장 - 강명헌> 중앙은행 독립성의 진화
세계 경제위기·유럽 재정위기로
물가안정 수호기관 개념 변화
통화정책 운용은 독립성 추구
고용·성장 위해 정부와 협조를


지난 4월 초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국은행은 정부와 여당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해 금리를 동결해도, 내려도 모두 비난받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금리 결정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권한’이란 전제를 강조했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며 당ㆍ정ㆍ청이 한목소리로 한은을 압박해왔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일어난 당ㆍ정ㆍ청의 공개적인 금리 인하 요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논쟁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중앙은행이 정부나 정치권의 간섭을 받지 않고 거시경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화폐금융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통화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과 운용에서의 자유를 의미할 뿐이며, 통화 정책의 목표 자체는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중앙은행에 부과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 통화 정책의 목표 및 수단이 물가 안정과 금리 정책으로 단순화되면서 정치적으로 독립된 중앙은행이라는 개념이 가능해졌고, 중앙은행 운영의 독립성으로 이어졌다. 물가 안정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엄격하고 철저한 규율은 정책결정자로 하여금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와 함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함으로써 정부나 정치권의 압력으로 돈을 마음대로 찍는 걸 막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런 물가안정목표제를 기반으로 조성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자산가격의 버블과 금융 분야의 불안정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위해 다양한 거시건전성 감독 수단을 활용하게 되면서, 정책목표와 수단에 대한 정치적 논란과 함께 그것들의 실효성이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게다가 금융위기 발발 이후 중앙은행들은 경기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 물가만 목표로 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여태껏 쓴 적 없는 비전통적인 정책들을 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였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안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고용목표제를 채택했고, 다른 선진국에서는 GDP(국내총생산) 성장이나 물가상승 목표제 등이 고려되었다. 이처럼 상충관계에 있는 여러 정책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경우 정치적인 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된 대규모 양적 완화는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간 구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중앙은행의 독립성만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로부터 독립된 물가안정 수호기관으로서의 중앙은행이라는 개념이 변화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독립성도 진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앙은행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독립성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스티븐 킹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의 독립시대는 끝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패러다임을 재정립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앞으로 상당 기간 비전통적 통화 정책과 함께 여러 정책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 중앙은행도 독자적인 독립성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우리의 경우 통화 정책 유효성을 위해 정부의 거시 및 금융 정책과의 적절한 조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행은 블라인더 교수가 지적한 대로 통화 정책 수단의 선택 및 운용에서의 독립성은 지켜야 하지만, 고용이나 성장 등 물가안정 이외의 정책목표를 위해서는 정부와 협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룰이 만들어져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