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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해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인 2010년 7월 남북관계를 토론하는 한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는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후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외국 전문가까지 포함된 정부 합동조사단이 면밀한 조사 끝에 ‘북한 잠수정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진실공방이 끊이지 않을 때였다. 세미나에서도 논란이 전개됐고 필자도 이러저러한 의문점을 제시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한 인사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의 입장은 무엇이냐?” 그 인사는 필자를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시하는 태도가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차분하게 답변했다. “진실이지요. 저는 정부의 조사결과를 신뢰하고 싶고,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 진실을 알고 싶은 겁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사회가 갈가리 찢겨 기억하기도 끔찍했던 3년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천안함의 진실을 거론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당시 사회분위기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당시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자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정부의 조사결과를 믿으면 애국자, 믿지 않으면 종북좌파로 몰리는 기묘한 사회분위기가 형성됐다. 심지어 대화 도중에 천안함을 폭침시킨 북한의 만행에 분노하지 않으면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기까지 했다.

오늘날의 사회분위기도 3년 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논란이 1년째 지속되면서 사회가 요란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급기야 종교계 일부에서 대통령 퇴진이라는 초강수까지 들고 나오고 이게 사회를 뒤흔드는 형국이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연상시키는 종북몰이가 진행되고 있다. 종북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조차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 종북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다.

문제는 진실에 대한 의구심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가 갑자기 경질되고, 수사 외압 논란이 식지 않고, 새로운 의혹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국민들은 진실을 명쾌하게 드러내려는 정부의 의지에 의구심을 보낼 수밖에 없다. 진실에 다가가기보다는 이를 현 정권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삼아 정치적 이득을 노리려는 태도도 상황을 꼬이게 하고 있다. 진실이 명쾌하지 않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를 들고도 쩔쩔매는 형국이 되었다.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진실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두 다름을 인정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합리적 문제제기를 종북좌파로 낙인찍거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편가르기를 우선한다면 대화는 단절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사회가 건강하고 튼튼하며 성숙한 사회다.

국론 분열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의견의 표출과 여론 형성을 막으려 한다면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사회의 기반은 취약해진다. 그것은 정권의 튼튼함보다는 불안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진실을 드러내 공유하는 것만이 난국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방법이다. 진실엔 두려움이나 불안도 없다. 진리가 자유를 줄 것이다. 

이해준 (문화부장)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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