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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문화예술로 ‘강제된 축복’을!/이영조 작곡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국립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가운데 ‘어떻게 해서 예술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느냐’고 질문을 한 항목이 있었다.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의 85%, 무용을 하는 학생들의 88%가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고 답했다. 음악의 공연분야와 무용은 아주 어려서부터 근육감각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예술의 깊이와 의미를 깨닫기 훨씬 전서부터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무용의 경우 네다섯살 즈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 하니, 이 나이에 그들이 예술에 대해 그 무엇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 힘든 과정을 거쳐 훗 날 진정한 의미의 예술세계에 입문 한다면, 이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강제된 축복’의 결과이다. 공연 예술이란 먼저 기술 위에 세워지는 것인 바, 현명한 부모들은 이를 진작 알고 채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음악 연주자들이 국제무대에 진출하여, 서구 유럽의 예술가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문화예술의 교류를 갖기 시작한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결과로 유럽에선 우리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직접 접하고 싶어 하는 욕구 또한 점증하고 있다. 우리가 이탈리아 오페라, 독일 가곡은 물론 많은 기악곡을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부르고 연주하는 것처럼 그들 또한 우리 음악을-우리 노래와 합창음악 그리고 다양한 기악곡을-향유 하고 싶어 한다. 또한 실제로 그러한 무대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제한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내어 놓을 만한 우리 작품이 다양 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작곡가의 책임 탓이 크다.

국제화 된 시대에 구태여 우리 문화니, 남의 예술을 따질 것 없이 눈 앞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누리면 되며, 이것이 진정 국제화 된 우리 라고 주장 하는 이들을 현재 우리 예술계를 이끄는 지도층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예술은 자아의 발로라는 것을 생각 할 때 내 것 없는 국제화는 문화 예술의 정신적 이민과 종속을 가져 올 뿐이다. 이것 또한 일정 부분 나쁠 것 없고 필요 하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그렇게 들썩인다면 이것은 문제다. 문화예술은 만남에서 시작 된다. 만난다는 것은 내가 있어야 그 다음에 상대를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정체성이 뚜렷한 작곡가들의 양성과, 우리와 이웃 예술문화와의 균형 있는 어우름이 있는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게 절실 하다. 이는 결코 19세기 민족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다.

어떻게 이것을 이룰 것인가. 최근 국가의 문화예술정책 중 한가지는, 창작에 중점적 지원을 한다는 안이다. 반갑고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성격의 창작 지원이어야 할 것인가 또한 현명하게 설정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지원 책 이전에 우리 어린 세대에게 강제된 축복을 주었어야 할 것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리 음악과 춤을, 우리 소리와 짓거리를 놀이터에서 놀 듯이 그들 곁에 강제로라도 가져다주었어야 했다. 기성세대는 국악인과 서양음악전공자로 나뉘어져 있고, 후자에게는 우리 것에 대한 교육이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후대에 와서 국제무대에서 세계적인 기능을 하는 높은 예술가들이 나왔다. 그것은 자랑스럽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이긴 하지만, 거기에 더해 알맞게 우리 것이 내재되어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국제적 문화 교류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전통예술을 누가 감히 낡고 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러나 메탈 사운드와 놀이 음악에 젖어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먼 옛날 궁중 속 이야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난 10년을 돌아 보라. 유수 같은 세월, 어린 싹들도 곧 느티나무로 자란다. 지금 내려주는 강제된 우리 음악의 축복,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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