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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세밑 ‘거인들의 삶 ’을 추억한다
넬슨 만델라가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푸른 언덕이 굽이치고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회상했던 고향 쿠누에서 15일(현지시간) 전 세계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 글을 쓰는 16일 아침, 미국 CNN의 톱뉴스는 ‘자유를 향한 95년의 빛나는 투쟁’이란 제목으로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고향에서 영면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영국 BBC 역시 ‘만델라 고향에 묻히다’란 제목으로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 기사 아래에 ‘북한 김정은’ 소식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지만, 전 세계 언론의 만델라에 대한 추모 분위기는 여전하다.

만델라는 CNN의 뉴스 제목처럼 95년을 살았다. 수인번호 ‘46664’로 산 세월이 27년이나 됐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95년의 삶은 자유를 위한 투쟁 못지않게 용서와 화해의 시간들이었다.

23살의 청년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청명한 여름 어느날, 결심을 한다.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무언가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자.” 그는 이 말대로 살았다. 서른 전에 이미 촉망받는 신학교 교수에, 교회에 오르간 연주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서른이 되면서 모든 것을 그만둔다. 6년 동안 공부해 의사자격증을 받았고, 적도아프리카(현재 가봉공화국)의 랑바라네로 향했다. 아인슈타인이 “우리 같은 초라한 사람들 속에 살고 있는 단 한 명의 위대한 인간”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52년 동안 30년 넘게 병든 흑인 곁을 지키며 현지에서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90살이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활동하던 때만 해도 간호사는 하녀 취급을 받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던 17세 소녀가 하느님에게서 소명을 받았다고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집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38명의 간호사와 함께 크림전쟁 현장에 나섰다. 여기서 명성을 얻은 뒤 간호학교를 세우고 ‘간호론’ 등 간호학의 고전을 저술했다. 오늘날 간호사를 지망하는 이들은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로 시작되는 ‘나이팅게일 선서’로 그는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나이팅게일은 1820년에 태어나 90살인 1910년에 잠자는 듯, 세상과 이별했다.

세밑, 세상이 시끄럽다. ‘차분하게 한 해 마무리…’ 같은 일상적인 얘기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다. 한국은 이래저래 어수선하고, 반도 북쪽은 전 세계에 엽기적인 뉴스생산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만델라도, 슈바이처도, 나이팅게일도 천수를 누렸다. 그들은 보통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결단에 주저하지 않았고, 평균인들의 눈엔 고난의 삶이었다. 신들은 이 때문에 그들에게 보다 많은 지상의 시간을 부여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한 해를 마감하면서 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볼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은 일인 듯하다.

세밑이 지나면 곧바로 새 마음을 먹어야 하는 새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창협 디지털뉴스센터장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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