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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혁명 전, 파리시민들은 정보를 어떻게 공유했나...’시인을 체포하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1749년 봄, 파리시 치안총감에게 ‘검은 분노의 괴물’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의 지은이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경찰에는 ‘모르파의 유배’라는 시의 제목 말고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은밀하고 대대적인 수사 결과 시를 낭송한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된다. 바스티유에서 취조를 받는 동안 그 학생은 자신에게 시를 건넨 사람을 자백한다. 경찰은 불법적인 시 암송에 가담한 혐의로 밀고된 14명을 잇달아 체포해 바스티유 감옥에 집어넣는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평범한 파리시민이었다. 경찰은 14인을 추적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결과 시민의 저항을 받게 된다. 베르사유당국은 왜 시를 추적하는 일에 그토록 열을 올렸나.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은 신작 ‘시인을 체포하라’(문학과지성사)를 통해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파리에서 정보가 어떻게 유통됐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1788년 구 체제를 무너뜨릴 여론의 향배가 들어있는 ‘14인 사건’의 취조기록, 첩보기록, 메모 등이 담긴 문서보관소의 모든 서류철을 꼼꼼하게 검토해 의사소통망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단턴은 이 책에서 ‘정보’라는 것을 현대사회의 전유물인양 여기지만 그 몇 세기 전에도 존재했음을 증명해내고자 한다. ‘14인 사건’의 시는 나름의 전파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시는 쪽지에 필사돼 건네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쓰고 암기하고 낭독했다. 지하출판물로 인쇄되기도 했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에 맞춰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결국 작전명 ‘14인 사건’은 원본 시의 지은이를 찾아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는 사람들이 시구를 덧붙이거나 빼고 마음대로 수정한 집단창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시가 회자되는 방식을 보면 어디서 시가 흘러 나왔는지 짐작은 된다. 저자는 당시 시가 유행한 베르사유 궁정문화를 살피며, 많은 시가 베르사유에서 나왔을 것으로 본다. 시의 근원을 찾기 위해 저자는 베르사유의 화려한 정치세계로 진입한다. 1749년 4월 24일. 그 날은 루이 15세가 모르파 백작을 해임하고 유배시킨 날이다. 35년 동안 국무를 맡았고 영원히 권력의 핵심에 있을 것 같았던 궁정정치의 상징적인 인물인 모르파는 왕의 기분을 읽어내는 능력과 은밀히 일을 도모할 수완이 있었다. 모르파가 권력을 유지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시였다. 그는 노래와 시를 수집했는데, 특히 궁정생활과 세간의 사건과 관련해서 문제될 만한 것을 모았다. 그리고 치안총감이 첩자로부터 들어올리는 보고에서 추문을 추려 추가했다. 모르파는 유배 중에 자신이 수집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완벽한 상태로 보존했는데, 지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모르파 샹송집’이라는 제목으로 보관돼 있다. 그러나 시에 대한 모르파의 열정은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 모르파는 지저분한 시를 통해 왕의 애첩 퐁파두르를 몰아내는 인신공격놀이를 벌인 결과 역풍을 맞고 몰락했다.

그렇다면 ‘14인 사건’은 단순히 궁정정치의 문제였을까. 루이 15세는 파리시민이 주고 받는 말에 몹시 민감했다. 모르파가 풍자시의 집중포화에 왕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퐁파두르와 다르장송 백작을 와해시키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왕은 파리시민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불륜과 근친상간, 평민 출신 애첩 퐁파두르 부인에게 보석과 성채를 퍼주느라 왕국이 거덜났다는 주제의 노래와 시가 왕에게 전달됐다. 그 가운데 일부는 국왕 시해를 주장할 정도로 과격했다. 프랑스 국민은 베르사유의 가장 내밀한 안식처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다른 종류의 권력, 곧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았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하나의 권력으로서 ‘대중의 목소리’로 규정한다.

단턴은 당시 민중의 목소리가 어떤 형태로 힘을 발휘했는지를 현대사회의 화두인 정보와 의사소통 체계와 접목해 흥미롭게 펼쳐간다. 역사와 사회학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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