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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우리시대 수도자들이 전하는 환한 삶의 지혜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수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마음을 잘 아는 이들이다. 명상과 묵상을 통해 매일 그 실체를 온전하게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저마다 만난 얘기를 들려줄 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우리 시대 멘토, 수도자들의 책이 이번주에 여러 권 모였다. 마음을 환하게 밝혀줄 책 속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어느 날 화를 잘 내는 젊은이가 선승을 찾아왔다. “저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꾸 화가 납니다. 화를 너무 자주 내다 보니 이젠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선승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그 화란 놈을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나?” “그게…지금 당장은 여기 없습니다. 어느 순간에 불같이 일어나는 것이라서.” 선승은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언제든지 그걸 보여줄 수 있을 때가 되면 다시 와서 나에게 좀 보여줄 수 있겠나?” 젊은이는 이번에도 난처한 듯 말했다. “어쩌면 그것도 힘들지 몰라요. 그건 아주 뜻밖의 상황에서 생겨나거든요.” 젊은이의 말에 귀 기울여 듣던 선승은 이렇게 말했다. “음. 그런 게 ‘화’라고 한다면 그건 자네 것이 아닌가 보네. 자네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무얼 그리 고민하는가?”(정목 스님의 ‘비울수록 가득하네’ 중)

#몇 년 전, 어느 대학 총장이 한 심리학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이런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유리병에 각각 똑같은 쌀밥을 넣고, 한 쪽 병에는 ‘감사합니다’란 이름을 붙이고 “사랑합니다” “고마워요” 등의 좋은 말을 들려 주었다. 다른 유리병에는 ‘짜증나’란 이름을 붙이고 “미워” “뭐, 이런 게 다 있어” “재수 없어” 등의 막말을 지속적으로 들려주었다. 한 달 후, 놀랍게도 ‘감사합니다’란 이름을 붙인 유리병의 밥은 하얗고 냄새 좋은 누룩 곰팡이가 피었다. 하지만 ‘짜증나’란 이름을 붙이고 나쁜 말만 들려 준 유리병의 밥은 물이 고인 채 썩었으며 냄새가 지독한 곰팡이가 피었다.(이영훈 목사의 ‘감사, 행복의 샘’ 중)

#때는 1952년 여름. 뜨거운 햇빛이, 포장만 쳤거나 혹은 낡은 판자 하나만을 덮은 지붕을 이글이글 태우는 콜카타의 슬럼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죽은 갓난아이의 사체를 들쥐 무리가 허겁지겁 뜯어먹는다. 마더는 매일매일 버려진 아이들과 병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헌신적으로 돌보았는데, 그날도 역시 길거리에 쓰러진 한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마더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노파를 향해 십자를 그린 뒤 자리를 뜨려고 했다. 순간 ‘사체’의 팔이 꿈틀했다. 몸 여기저기에 출혈이 있었고 거의 죽음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생명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마더는 노파를 일으켜 안은 다음 슬럼가를 빠져나가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구든 어서 이 사람을 봐주세요!” 악취를 풍기는 노파를 안고 외치는 흰색 사리의 수녀. 뒤늦게 나타난 원장은 불친절한 말투로 노파를 인수할 의사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생명이 있는 사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이 사람을 입원시켜 줄 때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리 아세요!” 그 순간 딱딱하게 굳었던 원장의 표정이 풀리더니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마더는 병원을 나왔지만 “이런 사람이 수백명이다”는 원장의 말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그녀는 그 길로 시청에 가 사람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집을 세울 장소 제공을 요청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슬픈 일은 병이나 빈곤이 아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아무 소용 없는 인간이라고 체념하는 일이다.’(오키 모리히로의 ‘마더 테레사, 넘치는 사랑’ 중)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 예수님은 우물 옆에 앉으셨습니다. 마침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우물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청하셨습니다. 여인은 유다인인 예수님이 물을 청하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진리를 비추어 주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하고 묻는 여인에게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평범한 이 여인에게 생명의 물에 관한 심오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인은 예배 장소의 전통을 말하며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새로운 시대의 종교적 지평을 열어줄 좋은 기회로 이용하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참예배는 자발적이고 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배는 지금 드려야 합니다.”(정진석 추기경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여는 예수님의 대화’ 중)

/meelee@heral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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