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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굴뚝
신사임당과 이이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어머니 용인 이 씨의 외조부인 최응현의 집이었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툇마루로 이뤄진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이 일자형 기와집은 우리나라 주거건축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예로 꼽힌다. 기둥에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걸린 사랑채를 지나 안채에 이르면 아궁이가 셋 달린 널찍한 부엌이 자리 잡고 있다. 부엌 뒤쪽에는 나즈막한 굴뚝이 아이들의 놀이감이 됐을 법도 하다. 옛 양반의 부엌 굴뚝은 높지 않았다.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 류이주의 구례 운조루도 굴뚝이 채 1m가 되지 않는다. 1000석 이상을 한 부잣집에 섬진강 들판을 한눈에 담아내는 높은 누마루를 3개나 지은 것과 비교하면 굴뚝은 초라하다. 낮은 굴뚝은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매캐했을 테지만 이것만은 단단히 단속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부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서럽고 배고품이었기 때문이다.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고 배려한 것이다. 


벽난로를 사용하는 서양의 굴뚝은 예기치 않은 선물의 통로였다.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그리스 정교회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는 생전에 남몰래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 한번은 가난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던 세 자매의 집에 찾아가 돈 주머니 3개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다. 돈주머니는 벽난로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양말 속으로 쏙 들어가 놀라운 선물이 됐다. 오래된 유럽의 목조주택의 굴뚝은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 주지 않으면 그을음에 불이 옮겨 붙어 화재의 원인이 되곤 한다. 굴뚝청소부가 여전히 활동 중인 이유다. 굴뚝 청소가 산업혁명기 런던에선 아이들의 몫이었다. 어린이 노동착취의 표본 격이지만 오스트리아 빈은 다르다. 아침에 굴뚝청소부를 만나면 행운이 온다니 굴뚝의 의미가 남다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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