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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2013년을 관통한 문화코드는 ‘그리움’/이해준 문화부장
유난히 부산했던 2013 계사년이 저물고 있다.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의혹에서 NLL(북방한계선) 논란, 동북아 영토 및 역사분쟁과 한국의 역사 교과서 갈등, 북한의 정변, 최근의 철도파업까지 한때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여기에다 경제난과 취업난으로 어느때보다 힘겨운 한해를 보냈다. 이런 속에서 국민들은 문화에서 위로를 받고 위안을 얻었다.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DNA)는 놀랍다. 연간 6000여편의 연극과 2000여편의 뮤지컬을 포함해 4만여건의 공연이 무대에 올려지고, 6만여 종의 신간서적이 발간되며, 700여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100만부를 돌파하는 책이 나오고, 1인당 평균 4편의 영화를 관람해 관람편수가 세계 최고다. 세계를 휩쓰는 한류 바람은 한국인의 독특한 DNA에 기인한다. 한류는 올해 K-팝과 드라마, 영화에서 관광, 의료, 식품으로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

올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여러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인문학 열풍에서부터 4050세대의 신문화수요층 부상, 복고 열풍, 소설의 귀환, 고전의 부활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문화현상의 특징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언어들이다. 이러한 특징을 한꺼풀 더 벗기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저류를 관통하는 정서가 발견된다. 바로 ‘그리움’이다.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이란 사회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공통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경험이나 기억, 함께 나누었던 정서를 다시 느끼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 갈증과 열망이 문화로 표출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만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연초 폭발적 인기를 끈 영화와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과 그 집단적 열정의 분출에 대한 그리움의 반영이었고, 1000만 관객을 웃기고 울린 영화 ‘7번방의 선물’은 급속히 해체되는 가족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케이블TV 프로그램으로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 중인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사회와 인간관계를 지배하기 이전 인간미가 철철 넘치던 시대에 대한 향수의 투영이며, 가수 김광석 뮤지컬 열풍이나 조용필 등 노장 가수들에 대한 열기도 같은 맥락이었다. 소설의 인기는 희노애락의 공동체 정서를 공유하던 서사(敍事)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연말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변호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해석을 떠나 이 영화는 돈만 쫒던 한 인간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에서 그리워지는 따뜻한 사람,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의 인격과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삶에 대한 염원이 관객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리움의 정서가 올 한 해 문화계를 관통했다는 것은, 끝없이 이어진 갈등과 분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현실적 한계에 직면한 국민들이 문화ㆍ예술에서 위안을 받았지만, 2014 갑오년엔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라도. 현실이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면 더 풍성한 문화 콘텐츠가 그 갈증을 풀어주길 기대한다. 그것이 변치 않는 문화의 사회적 역할인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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