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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 <28> 1월의 동면과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행복

  • 기사입력 2013-12-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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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1월은 누구에게나 희망의 달, 소망의 달이다. 산골에서 맞는 1월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원생활에 있어서 1월은 일 년 중 가장 혹독한 시련의 달이기도 하다. 사나운 동장군의 칼바람과 눈폭탄에 전원은 동토가 되고, 만물은 깊은 침묵과 동면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 엄동설한 속에서도 전원살이의 소소한 행복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새 봄의 씨앗도 잉태된다.

#1월의 전원풍경: 하얀 눈, 하얀 세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

오세영의 시 ‘1월’에서 묘사된 것처럼 1월의 색깔은 흰색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산과 들, 강과 계곡, 논과 밭이 간밤에 내린 눈에 덮여 온통 하얗다. 흰 눈이 빚어놓은 은빛 세상은 수확이 끝난 벌판에 방치된 너덜너덜한 검정비닐은 물론, 늘 먹고 사는 문제로 얼룩진 우리네 마음까지 정화해준다. 그야말로 순수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이해인의 시 ‘첫눈 편지’에서 만나는 눈처럼 말이다.

‘차갑고도 따스하게

송이송이 시가 되어 내리는 눈

눈나라의 흰 평화는 눈이 부셔라



하얗게 피어날 줄밖에 모르는

눈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해야겠네’

첫눈이 내릴 때는 이렇듯 감성적인 시구가 절로 입안에서 흥얼거려질 만큼 하얀 눈 세상이 더없이 좋다. 벌거벗은 나무들이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뿌려준 눈꽃송이로 흰 옷을 차려입고 뽐내는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동심에 젖어 무욕의 세계에 공감한다.

#1월의 전원생활: 혹독한 시련의 연속

그러나 새해 희망과 하얀 눈에 대한 찬미는 이내 계속되는 눈폭탄과 동장군의 횡포에 결빙되어 갇혀버린다. 산골의 강추위는 도시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혹독하다.

지난 2010년 가을에 강원도 홍천의 산골로 가족과 함께 들어와 네 번째 겨울을 맞은 필자 역시 1월에 대한 추억은 ‘낭만’ 보다는 ‘시련’으로 각인되어 있다. 실제로 2011년 1월 한 달 내내 아침최저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를 맴돌았다. 최전방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도 무탈했던 동상(귀 부위)을 이 때 얻었다. 2011년, 2012년 아침 최저 영하 27도까지 찍었던 막강 추위는 2013년 1월에 이르러서는 최저 영하 29도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가위 살인한파라 할만하다. 2014년 1월, 과연 이 기록마저 깨고 영하 30도를 찍을 것인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흰 눈과 찬바람이 지배하는 1월은 흰색의 순수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혹독한 시련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동장군의 서슬 퍼런 횡포에다 하얀 눈마저 폭설로 돌변하면, 겨울 전원생활의 환상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난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치우고 또 치워도 마당과 길, 비닐하우스와 천막차고지 위에 쌓이고 또 쌓인다. 제때 치우지 않으면 비닐하우스나 천막차고지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폭삭 주저앉거나, 내린 눈이 얼어붙어 빙판 길이 되어 위험천만한 상황이 초래된다. 이쯤 되면 눈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적’이 된다. 눈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혹한과 폭설이 계속되면 그동안 인내하며 버텨왔던 집과 시설물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눈 녹은 물이 채 빠지기도 전에 그대로 얼어버린 지붕 우수관(홈통)에는 크고 작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제대로 보온조치를 해주지 않으면 각종 상하수도 배관도 동파되기 일쑤다. 심지어 실내 붙박이장 벽면에 성에가 끼고, 창문틀까지 얼어버린다. 도시 아파트와는 달리 눈 덮인 숲속 전원주택은 늘 실내 습도가 높기 때문에 제습기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무척 불편하다.

이 같은 1월의 혹독한 시련을 감당하기가 버거워 아예 겨울만 되면 전원 보금자리를 버리고 서울 등 도시의 아파트로 떠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혹한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동장군이 마치 미친 듯 날뛰는 1월 혹한기라 할지라도, 오로지 시련만 있는 것은 아니다. 1월은 말 그대로 동면의 기간이요. 침묵의 기간이다. 이 기간 조용히 귀만 기울여도 자연의 소리,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만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혼자 있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자연과의 대화 기회는 수시로 찾아온다. 폭설이 내리면 산속에서 민가로 내려오는 고라니, 너구리, 꿩과 참새 등은 항상 만나게 되는 자연의 친구다.

여기에 일상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소소한 행복도 전원생활의 참맛 중 하나다. 전원에 살다보면 비록 현금은 없어도 이런저런 건강한 자연 먹거리는 항상 넘쳐난다. 필자 가족 역시 한겨울에는 집에서 따끈따끈한 호떡을 만들어 먹거나, 고구마 감자 등을 구워먹으면서 전원생활의 참맛인 ‘느림의 미학’을 한껏 즐겨본다.

온통 하얀 눈에 덮여 수채화가 된 산골마을의 모습

도시에서 추운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별미이듯, 전원에서 즐기는 색다른 먹거리는 맛과 영양 그 자체다. 매년 여름과 가을에 수확해 냉동고에 얼려 보관해놓았다가 한겨울에 해동시켜 먹는 오디(뽕나무 열매)와 옥수수는 우리 가족의 최고 간식거리다. 또 시골 방앗간에서 현미 절편을 뽑아와 겨우 내내 졸깃졸깃한 떡국과 떡볶이를 즐긴다.

첩첩산골에서 농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필자는 백수의 즐거움(?)도 한껏 누린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지 않으니 세수를 안 해도 된다(찾아올 사람도 없다). 당연히 면도도 안하고 화장품도 안 바른다(돈이 절약된다). 잠은 자고 싶은 만큼 푹 잔다(회사 생활 때는 늘 잠이 부족했다).

이한치한(以寒治寒). 한겨울 눈 덮인 고봉준령을 오르면서 호연지기를 충전하고 호젓한 겨울 여행의 시간도 갖는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전원생활을 꿈꾸는 당신에게: “피하지 말고 즐겨라”

귀농이든 귀촌이든 전원생활은 대개 산간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나라 국토의 64%가 임야이고, 특히 귀촌인 대부분은 산 좋고 물 좋은 청정 산간지역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강원도가 아닌 경상남도, 전라남도 등 남쪽지방이라 하더라도 산간지역의 겨울은 상대적으로 더 춥다.

그만큼 전원의 겨울(특히 1월)은 매우 혹독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두 번 겨울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적응이 되고 서서히 즐길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겨울은 겨울답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우선 요구된다. 즉, 혹한의 전원에서는 도시의 아파트와는 달리 많이 입고 생활하고, 잘 때도 두툼하게 덥고 자면 된다.

필자 가족의 경우 산골 집 실내 온도는 1월 한 달 내내 영상 8~15도 정도로 유지한다. 각종 상하수도 배관의 동파를 막기 위해 새벽과 아침에는 기름보일러의 컨트롤러를 외출기능으로 맞춰놓는다. 이 때 유지되는 실내온도가 영상 8도다. 실내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대신 내복 위에 모자달린 인조양털과 군인용 ‘깔깔이’를 껴입고 수면양말과 실내화를 신고 생활한다. 그리고 밤에는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잔다(이를 저온 수면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사실 가장 추운 1월에도 충분히 버틸 만하다. 건강에도 좋고, 에너지 절약도 되니 일석이조다. 실제 우리 집의 경우 1년 동안 기름 사용량이 3드럼(1드럼=200리터)에 불과하다. 통상 시골 집 사용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론, 전원에서 혹한의 1월을 탈 없이 넘기려면 사전에 철저한 월동준비가 필수다. 상하수도 배관, 지하수, 보일러 등 물과 관련되는 시설은 철저하게 보온재로 감싸주고 열선을 설치한다. 또 차량의 경우 문이 달린 차고지를 확보하고, 스노우 타이어 및 체인 등도 준비한다. 아울러 폭설이나 강풍, 전력 블랙아웃에 따른 전력공급 중단에 대비해 가정용 비상 발전기도 마련해두면 좋다.

#1월의 전원 농사: 침묵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다

혹한과 폭설은 모든 걸 하얗게 덮고 얼려버리기에, 가을추수를 끝낸 농사 역시 1월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엄동설한 속에서도 비닐하우스가 아닌 눈 덮인 들녘에서 파릇파릇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물은 있다. 마늘, 호밀, 보리 등이 그렇다. 그 성장 과정은 인내를 넘어 경이롭기 까지 하다.

1월에도 푸릇푸릇 자라나는 마늘 밭
한겨울에 먹기 위해 저장 해놓은 고구마

한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작업도 이 때 조용히 진행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이 지원되는 유기질비료와 가축분 퇴비는 1월 중 신청한 각 농가로 배달된다. 조선 전기 농사에 관한 기술을 해설한 최고의 농법서인 ‘농사직설’에 보면, ‘1월에는 농기구를 정리하고 소를 길러 거름을 만들며, 밤이면 새끼를 꼰다’고 했다.

각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새해 농업인을 위한 각종 교육도 대표적 농한기인 1월부터 본격화된다. 지역 특산물 재배 및 가공, 마케팅 등을 다루는 각 지자체의 농업인대학과정에 대한 신청은 대개 1월에 이뤄진다. 또한 각 지자체가 읍·면사무소를 돌며 개최하는 새해 농업인실용교육 역시 12월 중 시작되어 1월에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애써 땀 흘려 일구어 가을에 수확한 감자, 고구마, 배추, 무, 과일 등의 저장관리도 중요하다. 자칫 얼거나 썩어서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모두 높은 습도를 필요로 하지만, 둘을 한 곳에 저장 보관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감자는 추위에 잘 견디지만(온도 0~5℃, 습도 80~85%), 고구마는 두 자릿수의 실온을 유지하는 곳(온도 12~15℃, 습도 85~90%)에 보관해야 한다.

이처럼 겨울의 정수, 1월은 기나긴 동면의 기간, 침묵의 기간만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새 봄을 묵묵히 준비하는 담금질의 시간이기도 하다.


박인호 (전원 칼럼리스트, cafe.naver.com/r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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