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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조진래> 청년 창업만큼 중요해진 ‘장년 재기(再起)’
‘10년 후 세상을 변화시킬 무언가를 2시간 내에 사진으로 찍어오라.’ 글로벌 광고회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신입사원 면접 과제다. 여러분이라면 무얼 찍어 왔겠는가. 스마트폰? 3D프린터? 그러나 한 지원자만은 달랐다. 그가 찍어온 것은 패기에 찬 자신의 얼굴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창업할 생각이 있느냐 물었다. 63%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정작 창업 준비생은 5%에도 못 미쳤다. 불안하니까, 실패가 두려우니까 결국 패기를 접고 안정된 직장을 찾는 게 현실이다. 현란한 창업지원책에도 불구하고 대학창업이 주춤한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 등과 달리 우리 대학에서는 산학협동 연구의 성과(특허권 등)가 고스란히 기업 차지다. 학교는 ‘도구’이기 십상이다. 연구교수들도 평가에서 ‘실패’라는 오명을 쓸까 도전을 꺼린다. 이래서야 창업정신이 살겠는가. 신입생 1년간 창업부터 가르친다는 미국 뱁슨(Babson) 대학의 시스템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 주변에 부쩍 40~50대 조기 은퇴자들이 넘쳐난다. 다행히 제2의 직업을 얻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장년 재기’ 지원의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다. 청년창업이 경제동력을 만드는 일이라면, 장년 재기는 동력을 유지케 하는 힘이다. 창업이든 재창업이든 ‘장년 재기’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하면, 이들은 고령화 시대의 ‘폭탄’이 된다. 연금에 의지하며 인생의 절반을 더 살아야 하는 이들의 재기는 곧 사회 안정화와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실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중기청 조사에 따르면 40대 이상 장년 창업의 80%가 생계 목적이다. 가슴 아픈 일은 그 절반이 자신이 택한 사업이 쇠퇴기에 있다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같은 처지의 동네 골목 사장들이 경쟁자다. 이렇게 ‘망할 줄 알면서’ 시작한 장년 창업이 매년 2만건 안팎씩 증가세다. 3분의 2는 사업 경험도 없다. 결국 절반이 3년 내 폐업에 내몰린다.

그렇다고 재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연간 500억원 수준의 재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연간 1만여명의 장년 창업 실패자들을 돕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창업 및 재창업시장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제 개입은 불가하겠지만, 끝이 뻔한 제살깎기식 소모전을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 된다. ‘장년창업 성공 후보군’을 잘 만들어 실질적인 컨설팅을 해 주어야 한다. 장년 재기 지원액도 크게 늘려야 한다. 생계형 지원은 미소금융 등 민간에 일정부분 맡기고, 정부는 산업에 도움될 보다 구체적인 창업과 재기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내 DB에 ‘실패’라는 거대 폴더를 따로 둔 GE처럼 우리도 ‘실패 매뉴얼’을 만들고, 장년의 실패자들에게도 실업급여 등 최소의 사회안정망을 보장해 재기를 도와야 한다. 특히 사치앤사치 신입사원 같은 패기를 가진 40대, 50대 젊은 실패자들에게는 꼭 기회를 주어야 한다.

테니스 여제(女帝) 나브라틸로바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 뛰려는 그들을 격려해 주자. 그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일 수 있다.

조진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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