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희귀 조선 불화 ‘100년 유랑’끝 귀향...2만5천㎞ 타향살이 전말
[헤럴드경제=박은혜기자] 일제 때 유출돼 미국과 일본의 고미술시장을 떠도는 등 100년간 유랑하던 조선시대 대형 희귀 불화가 문화재지킴이 기업의 노력으로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다.

18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불화는 석가모니의 배경으로 작게 존재하던 존자(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성자)들이 부처 얼굴 크기 만큼 부각되는 등 파격적인 도상을 보여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큰 희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불화의 유출 및 경매경로를 추적한 결과 과거 일본 고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가 일제시대 미국에 한국 문화재를 대거 경매한 목록을 처음으로 확인, 추가 국외 문화재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정밀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유랑의 시작

연이은 전란을 딛고, 조선 후기 영-정조 르네상스기가 막 꽃이 필 무렵이던 1730년대, 조선의 어느 사찰에서 대형 불화 한 점이 제작됐다.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기존의 표현 방식과는 달리 파격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수작으로, 가로 세로 각 3m가 넘는 대형 불화다. 당시 유행처럼, 이 불화 역시 어느 대형 사찰의 대웅전 뒤에 모셔 중생을 교화하고 위로하는 종교화 역할(후불탱화)을 했을 것이다.

불화는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 고달픈 해외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진 뒤 일본으로 반출돼 일본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에 넘겨진 것. 1930년대 후반에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주요 미술시장을 떠돈다.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이 불화가 100년의 유랑생활, 디아스포라(DIASPORA-유태인의 유민 생활을 이르는 표현)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랑 거리는 무려 2만5000㎞에 달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 이하 ‘재단’)은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실에서 기증방식으로 돌려받은 미국 허미티지박물관(Hermitage Museum & Gardens, 버지니아주 노포크 소재) 소장 조선불화(318.5㎝×315㎝, 비단에 채색)를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발견과 반환 추진

재단은 2013년 5월초 국외한국문화재 조사작업을 통해 이 불화를 처음 발견했다. 불화는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로부터 ‘2011년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 선정돼 복원 및 보존처리 지원 등을 도와줄 후원자를 찾던 중이었다.

재단은 국외한국문화재 복원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현지 및 문헌 조사 등을 통해 지원 여부를 검토했다. 조사 결과 불화는 국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구성상 희귀함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특징을 갖춘 현존 유일본이었다. 재단은 불화의 학술적 가치와 반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내 반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불화는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그려 넣고 10대 제자 중 아난 존자와 가섭 존자를 석가모니 부처 앞에 강조해 넣은 ‘석가삼존도’ 형식이다. 조선불화 전문가들은 석가모니 부처의 광배나 대의(大衣)의 문양 등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양식이고, 삼존의 구도나 보살의 표현(보관과 영락장식)은 1731년에 제작된 송광사 응진전 ‘석가모니불도’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1730년대를 그 제작시기로 보고 있다.

▶부처님 크기 만한 수행자...파격적 화폭

그러나 스타일상 종래의 그것과는 파격적으로 다르다. 아난 존자와 가섭 존자가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상단부에 작은 모습 등으로 묘사된 기존의 것들과는 다르게, 두 인물이 석가모니 부처의 하단 전면에 크게 부각되어 서로 대화하듯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불화 전문가인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이 불화는 지금까지 발견된 바 없는 파격적인 도상양식을 갖추고 있어 미술사적으로도 희귀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며 불화의 독특한 스타일을 첫 번째 특징으로 꼽았다. 또한 “아난 존자, 가섭 존자,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협시불 등 등장인물의 섬세한 표정 묘사 등은 일찍이 조선 불화에서 보기 드문 수작에 속한다.”며 인물 묘사의 섬세함을 두 번째 특징으로 꼽았다.

아울러 그림의 크기만 가로 세로 각 3미터가 훨씬 넘는(318.5㎝×315㎝) 대형 불화라는 점에서 사찰의 대웅전 후불탱화였을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일제의 약탈 문화재 유통 경로

조사결과 불화는 일제 강점기 초반 국내 어느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져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다. 그 곳에서 불화의 일부분에 대한 수리와 보수-불화의 수리된 내용(안료 등)을 분석한 결과,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수리하던 기법과 같은 것으로 보임-를 거친 뒤, 태평양 건너 미국 톨레도박물관(The Toledo Museum of Art, 오하이오주 소재)에 잠시 전시(1942)되는 등 미국 내 미술관 및 미술품 시장을 떠돌았다.

그러던 중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12.7.) 이후, 미국 정부가 미국내 일본 재산의 몰수를 위해 설치한 ‘적국자산관리국’(Office of Alien Property Custodian, APC)에 의해 야마나카상회의 모든 미술품이 몰수된다. 미국 정부는 몰수된 야마나카상회의 미술품을 모두 경매에 넘겼고, 이때 불화도 6,500달러라는 경매가로 1943년 뉴욕 경매시장에 등장했다. 그러나 유찰을 거듭해 마침내 1944년 최종 낙찰가 450달러에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려간다. 식민지 시절 뜯겨진 불화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의 회오리 속에서 일본의 적산으로 낙인찍혀, 미국 정부에 손에 넘겨진 뒤 미국의 한 박물관에 팔려간 것이다.

이후 불화는 마땅한 전시공간을 찾지 못한 채 보관되어 오다가, 1954년 노포크박물관(Norfolk Museum of Arts and Science, 버지니아주 소재, 현 크라이슬러박물관)에 20년간 장기 대여 형태로 전시되기도 한다. 1973년 다시 허미티지박물관에 돌아온 불화는 둥글게 말려 천장에 매달린 채 40년간 사실상 방치된 채 보관되어 왔다. 그리고 2011년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는 이 불화를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 선정했다. 그러던 중 재단의 국외문화재 조사작업을 통해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국외 문화재 반환의 새로운 모델 제시

이 불화의 반환은 나라 밖으로 반출된 문화재가 해당 국가의 소장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뜻 있는 기업의 후원과 함께 기증의 형식으로 반환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는 앞으로 국외 문화재 반환 및 환수의 한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은 2013년 7월과 10월 허미티지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불화의 보관상태 등을 직접 조사하는 한편, 관련 자료를 수집해 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자문위원회를 수차례 열어 반환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소장기관인 허미티지박물관측과 반환을 협의했다.

재단은 불화가 “국내에 다시 돌아올 때 비로소 학술적, 예술적, 종교적 가치도 더욱 커질 뿐 아니라, 복원을 통한 연구와 전시 등 적극적인 활용으로 보다 더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며 문화재의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박물관 측에 반환을 거듭 요청했다.

허미티지박물관 이사회 측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대한민국에 속할 때 보다 더 잘 보존되고, 가치 있게 활용될 수 있으며, 널리 사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기증을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한 미국계 기업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Riot Games Korea)가 허미티지 박물관에 박물관 운영기금을 기부했다. 이로써 100년 동안 나라 밖을 떠돌던 불화의 귀향이 최종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재단, 국외소재 문화재 끝까지 추적

지난해 말 국내에 도착(12.19)한 불화는 재단과 허미티지박물관 간의 기증절차를 마쳤고(12.20)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재단은 기증반환 받은 유물의 성격과 이후 관리 및 전시 활용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상기관을 선정하여 기증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재단은 이번 불화의 조사과정에서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가 미국 내 미술품 시장에서 우리의 문화재급 미술품을 판매하다 미국정부에 의해 강제 압류되어 경매(1943~1944)에 내 놓았던 목록과 그 내용의 일부를 확인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에서 불법 유출되어 미국 시장에서 유통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향후 미국 정부가 압류한 야마나카상회 경매 목록에 대한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grac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