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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 박인호> 겨울 마실서 만난 ‘농업의 현실’
“뭐, 운이 좋았을 뿐이죠.”

“그래도 운만 가지고 되나요? 열심히 땀 흘린 결실이지요.”

“지난해 여름 토마토 주산지에 비가 많이 내려 작물이 심하게 망가져서 그 덕에 우리가 살았지요. 올 한 해는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해요.”

대표적 농한기인 1월 한겨울, 모처럼 강원도 홍천 이곳저곳으로 ‘마실’을 다녔다. 토마토 재배로 잔뼈가 굵은 한 농민은 만나자마자 지난해 거둔 성과는 오로지 ‘운’이었다며, 새로 시작해야 할 올 한 해 농사를 걱정하기에 바빴다.

“지난해 배추 재배면적을 두 배 늘렸다가, 빚만 왕창 떠안았네요.”

“작황은 좋았다던데….”

“그럼 뭐합니까? 전국적으로 풍년이 들어 가격이 폭락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지요.”

2012년까지 수년간 고랭지 배추 농사로 짭짤하게 재미를 본 또 다른 베테랑 농민의 푸념이다.

그동안 태풍과 폭우로 다른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어도 이곳은 별 탈 없이 지나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려왔는데, 지난해엔 전국적인 풍년 탓에 쪽박을 찼다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물론 경제학에는 농산물 수요의 비탄력성(가격 변동에 수요량이 크게 변동하지 않는 성질)으로 인해 풍년이 들면 가격이 하락해서 농부의 수입이 되레 흉년 때보다 줄어든다는 ‘농부의 역설’ ‘풍년의 역설’이란 이론이 존재한다.

한 지역(단위)농협 관계자는 이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만약 풍년이 들어 적정 수급보다 공급이 10% 늘어나면 가격이 10% 떨어져야 맞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격이 50% 폭락합니다.”

흉년이 들면 정책적으로 수입 농산물을 대거 들여와 가격안정을 꾀하니, 흉년이 농부의 소득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남이나 다른 지역은 흉년이 들고, 나와 우리 지역은 풍년이 들어야 진짜 풍년가를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이렇다 보니 베테랑 농부들도 ‘농사는 투기’ ‘너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는다).

수십 년 동안 지역농업을 지도해온 한 농업전문가는 올 한 해 국내 농업전망을 묻자, “기후변화,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쌀 관세화, 수입농산물 급증 등 대형 이슈에 둘러싸여 무척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마지막에 만난 2년차 귀농인의 말은 지금도 계속 귓전을 맴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도 한 달에 50만원씩 적자가 나요. 갖고 들어온 통장에서 곶감 빼먹듯 쓰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데….”

시골생활 5년차인 필자가 만나본 농업의 현실은 이처럼 냉엄했다. 지난 2009년 시작된 ‘귀농시대’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아마도 올해는 2009~2011년 귀농한 이들의 성패가 드러나고, 그 결과가 귀농 흐름에 반영될 것이다. 예비 귀농인들의 정확한 농업현실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 같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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