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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메달이 고픈 그들…‘우생순 감동’ 겨울에도 쓴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역사에 남을 만한 은메달을 일궜다. 1998 서울올림픽과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올림픽 여자단체 구기종목 2연패를 이뤘지만 국내선 늘 찬밥신세였다. ‘한데볼’이라는 자조섞인 별명도 스스로 붙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아테네에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2008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우생순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올해도 ‘제2의 우생순’ 드라마가 탄생할 조짐이다. 바로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일궈낸 여자 컬링과 역대 최초로 전 종목 출전을 확정한 봅슬레이를 비롯해 썰매 대표팀 그리고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주인공이다. 많은 이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며 박수를 보내지만 천만의 말씀. 이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소치판 우생순’의 깜짝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여자 컬링, 올림픽은 끝이 아닌 시작

신미성, 김지선, 이슬비, 김은지, 엄민지(이상 경기도청)로 구성된 여자 컬링 대표팀은 1994년 한국에 컬링이 도입된 지 20년 만에 올림픽 첫 출전의 쾌거를 일궜다. 2009년 중학교 교감이던 정영섭 감독이 알음알음으로 선수들을 하나둘 끌어모은 게 역사의 시작이다. 중국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떠돌이 선수생활을 하던 ‘컬링 유학생 1호’ 김지선,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경북 구미에 내려가 유치원 교사를 하던 이슬비, 학비가 없어 학업을 포기하려던 김은지를 데려왔다. 이들은 다시 컬링에 꿈을 실었다. 훈련비와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모텔에서 김밥을 먹으며 운동했고, 외국 선수가 쓰다 버린 일회용 브러시 헤드를 주워 경기 때마다 빨아 썼다. 3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2012년 3월 캐나다 레스브리지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최약체로 평가받은 한국이 4강신화를 쓴 것이다. 이때의 성적은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출산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신미성이 첫돌을 앞둔 딸을 남겨두고 다시 합류해 지금의 대표팀을 완성했다.

썰매 불모지?‘썰매 왕국’초석 다진다

역대 가장 많은 선수(16명)가 출전하게 될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의 썰매종목 선수 역시 ‘우생순 신화’를 꿈꾼다. 봅슬레이 남자부에선 원윤종ㆍ서영우(이상 경기연맹), 김동현ㆍ전정린ㆍ석영진ㆍ김식(이상 강원도청), 오제한(한체대), 김경현이 나선다. 여자 2인승에는 김선옥(서울연맹)과 신미화(삼육대)가 출전한다. 루지에는 남자 싱글 김동현(용인대), 남자 더블 박진용(전북루지연맹)-조정명(대한루지연맹), 여자 싱글 성은령(용인대)이 나선다. 스켈레톤 남자 1인승에 윤성빈(한체대)과 이한신(전북연맹)이 참가한다.

대부분이 다른 종목에서 빛을 보지 못하다 ‘반전 드라마’를 일군 선수들이다. 여섯살 아들을 둔 김선옥은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 출신이지만 2008년 출산과 함께 운동을 그만뒀다. 김선옥과 호흡을 맞추는 신미화는 창던지기, 남자 봅슬레이 석영진은 역도, 남자 루지 조정명은 축구, 여자 루지 성은령은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이들은 국내에 썰매 트랙이 없어 아스팔트 위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며 훈련했다. 선배들이 사용하던 낡은 헬멧을 물려 쓰고, 외국 선수의 중고 썰매를 닦아 썼다. 썰매의 무게를 높여 조금이라도 더 스피드를 붙이기 위해 ‘살과의 전쟁’도 했다. 하루 6끼를 먹고 야식으로 꼬박꼬박 라면을 챙겨먹으며 많게는 20㎏ 이상 몸을 불렸다. 그 결과 역대 가장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스키점프, 다시 비상하는‘국가대표’

최흥철, 김현기, 강칠구, 최서우(최용직에서 개명·이상 하이원)가 다시 날아오른다. 2009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이다. 이들이 처음 뭉친 건 1991년이었다. 한 해 전 개장한 무주리조트가 인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스키점프 꿈나무를 모집했는데, 그때 합격한 선수들이 지금의 대표팀 멤버다. 1995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들은 300만원이 조금 넘는 연간 훈련수당으로 10년 넘게 훈련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휴식기에는 막노동 현장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서로 다른 사연과 배경을 가진 스키점프 선수들이 자신의, 그리고 꿈에 접근해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국가대표’가 흥행에 성공하며 훈련 환경도 나아졌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서 단체전 8위라는 한국 설상 종목 최고 성적도 일궜다. 2010 밴쿠버 올림픽 때는 강칠구가 출전권을 따지 못해 단체전에 나서지 못했지만 소치에서 다시 4명이 뭉쳐 개인전과 단체전 메달에 도전한다. 1년 전 스웨덴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의 볼프강 하트만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합류하면서 이들의 실력과 눈높이는 한 뼘 더 자랐다. 이들이 소치에서 어떤 드라마를 쓸지 궁금하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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