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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김승연 회장 執猶, 시류판결 벗는 계기로
법정에 선 재벌에 대한 판결은 경제민주화 바람이 일기 전과 후가 크게 달랐다. 이전에는 재벌에 대한 양형이 나올 때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재벌 봐주기, ‘3-5(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정찰 형량’의 힐난이 뒤따랐다. 그 이후에는 반(反)기업 정서가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징벌적 가중처벌, 유전중죄(有錢重罪), 재벌 때리기, 먼지털이식 수사 등의 불만이 재계에서 쏟아졌다. 이 모두 합리성이 배제된 ‘시류 재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고법이 11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LIG그룹 구자원 회장에게 내린 판결은 이런 비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하다.

서울고법은 부실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된 한화 김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20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 혐의로 기소된 LIG 구 회장에게도 똑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서울고법은 양형 이유에 대해 “기업주가 회사 자산을 개인적 치부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 전형적 사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1597억원이 공탁되는 등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들이 이뤄졌다”며 “피해 위험 규모도 확대 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업무상 배임에 대한 전향적인 해석이다. “실제로 발생한 피해가 없는데도 피해 가능성이 있는 금액이 수천억원으로 부풀려졌다”는 판결문은 구조조정을 위한 경영상 판단을 업무상 배임으로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담고 있어서다.

LIG 구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부자가 함께 처벌받은 점, 그룹의 주력기업 경영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피해 보상에 나선 점, 79세의 고령 등이 감안됐다. 반면 장남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에게는 징역 4년을,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차남 구본엽 LIG엔설팅 고문에게는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해 엄벌의지를 보였다.

그동안 재계는 대기업 총수에게 지나치게 높은 형을 선고, 오히려 역차별하는 ‘사법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이날 판결은 법원이 이런 시각을 고려해 사안별로 양형을 적절히 달리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돼 다행스럽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CJ그룹 이재현 회장,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 등 대기업 오너와 관련한 재판이 다수 남아있다. 사법부 판결은 흔들림 없는 원칙이 생명이다. 시류성 판결을 벗어나 소신 있는 법 적용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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