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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올림픽]러시아인의 안현수 사랑, 그 이면엔…
이해준 기자의‘ 소치는 지금…’
“빅토르 안을 아세요?”

“그럼요.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어제 금메달을 딴 거 보고 알았어요.”

“빅토르 안이 한국의 쇼트 트랙 선수였다는 사실도 아세요?”

“과정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건 알아요. 어쨌든 금메달을 땄으니 자랑스럽죠.”

러시아의 스포츠 전문 제2TV는 16일(현지시간) 매 시간마다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의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 박진감 넘치는 안현수의 경기장면과 금메달의 기쁨을 전하는 인터뷰가 이어졌다. 반환점을 돈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뜨거운 열기가 러시아 전역에 퍼지는 듯했고, 안현수는 국민적 영웅으로 러시아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동계올림픽을 국가의 위상을 제고하고 국민적 자존심을 키우는 기회로 이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안현수의 1000m 금메달과 1500m 동메달이 쇼트트랙에서 따낸 러시아 최초의 메달이라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국영 러시아TV의 여행담당 PD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앤드류 판크라토브는 “옛 소련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데 (소치올림픽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이 가정에서는 물론 직장에서도 메달 가능성이 있는 종목의 경기를 거의 다 볼 정도로 관심이 많다”고 열기를 설명했다.

같은 방송국의 여성 PD인 타티아나 테레쉬니키바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녀는 “러시아 선수들의 메달을 자랑스러워하고 메달을 따는 순간 모든 사람이 같이 호흡한다”며 국민정서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의 크렘린 건너편 국영 굼백화점 안에 설치돼 있는 소치 동계올림픽 홍보물.

안현수가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3관왕을 달성하고도 국가대표로 다시 선발되지 않아 러시아로 귀화했다는 사실은 이미 소치 올림픽 이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러시아 전역에 방송된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판크라토브는 “빅토르 안이 이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받았다는 건 몰랐다”며 “한국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메달은) 우리에게 고맙고 즐거운 일”이라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모스크바 시민들도 안현수가 불과 몇년 전 귀화한 선수라는 사실보다는, 그가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겨준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붉은광장’ 뒷편에 있는 소치 올림픽 티켓 판매창구에서 만난 30대 중반의 여성 옐레나는 “한국에서 온 선수라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그의 금메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알렉산드로(49)도 “빅토르 안은 카레이스키(한국인)도 루스키(러시아인)도 아닌 ‘나쉬 옵쉬(우리 공통의)’ 선수”라고 강조하면서도 “(그가 러시아에 메달을 안겨준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현수의 귀화 배경은 지금 금메달의 환호에 가려져 있는 것 같았다. 테레쉬니키바는 “빅토르 안이 (대중적 저항가수인) 빅토르 최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러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메달의 환호가 가라앉으면서 그의 러시아 귀화와 관련한 한국 스포츠계의 부끄러운 실체를 알게 될 경우 한국의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그에 대한 사랑과 환호 만큼 대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모스크바=이해준 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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