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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박영상> 삼성 공채방식과 평등권
삼성그룹이 지난달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바꾸려 했다가 거센 반대에 부딪혀 시행도 해보기 전에 포기했다, 새로운 채용 방식의 골자는 대학 총장의 추천제를 도입하고 서류심사에 무게를 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대학은 대학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심지어 정치권까지 합세해 새 방식에 뭇매를 가했다.

삼성의 새 채용 방식에 반대하는 쪽은 대학 총장에게 할당된 인원이 학교마다 다르고 지역별로 차가 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차등 배정은 지역 차별은 물론 대학의 서열화를 촉진하거나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반대하는 쪽의 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평등주의가 침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평등권은 자유민주제도가 지닌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다. 고대나 중세의 정치철학은 계급이나 계층 간 차별을 자연적이고 주어진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근대, 특히 프랑스혁명과 제퍼슨 대통령이 주도한 미국식 민주주의를 거치면서 평등주의(egalitarianism)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가치로 자리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평등권의 적용범위나 실행 방안이 말끔하게 정리정돈된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거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등 근원적인 평등권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서 평등권의 해석이나 방향을 따지는 일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결과의 평등성에 대해선 좌파 우파가 맞서고 있다.

결과의 평등권이 옳다는 사람은 평등권이 공동의 이익을 촉진하기 때문에 사회적 응집력이 큰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불평이 줄어들고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바탕이 제공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정의의 구현은 개인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요컨대 평등권은 조건에 따라 혹은 환경에 따라 달리 적용될 것이 아니라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인간 삶의 질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것을 평등의 이름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인의 의욕이나 노력은 좌절되어 사회 전체의 삶은 하향평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평등권에 대한 과도하고 일률적인 강조는 사회공학적인 통제권이 발동되어 다양성이나 다원성이 증발되고 일원화한 사회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탄력성이나 활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에 대한 평등권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삼성의 새 공채 방법이 서둘러 봉합된 것은 평등권에 대한 담론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 것 같아 아쉽다. 형식논리나 표피적이고 막연한 느낌에 기반을 둔 일방적인 주장이 과연 실질적이고 옳은 일이었나를 따져볼 수 있는 일이었는데…. 평등권과 다양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실질적인 공약수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실험해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박영상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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