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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신창훈> 편식과 집단선택의 함정
일본인 친구가 있다. 그는 불행한 일본 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행복도상국 일본’의 저자다. 메자키 마사아키(目崎雅昭). 그 친구와 난 게이오대 미타(三田) 캠퍼스 앞 허름한 주점에서 자주 술잔을 기울였다. 한 달에 두세 번은 만난 것 같다. 작년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으로 도쿄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했다. 그가 물으면 난 언제나 “뭐든 상관없어. 당신 좋은 걸로 정해”라고 답했다. 술 마실 장소와 메뉴를 정하는 것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어느 날은 그가 정색하더니 ‘낫또’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사실 난 낫또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괜찮아. 당신 좋을 대로…”라고 했다. 그에게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 나왔다.

“난 낫또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그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세계 5대 건강식품이라고 자랑하는 자기 나라 음식을 이렇게 폄훼하다니…. 얼추 취기가 오르자 그는 “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확실히 얘기하지 않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난 남에게 ‘음식의 기호’를 제대로 말해본 기억이 없다.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서 ‘밥상에 올라온 음식은 뭐든 먹어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내 아이에게 ‘편식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쳤다.

메자키는 일본 사회도 한국과 다를 게 없다고 얘기했다. 메자키가 볼 때 나는 편식을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좋고 싫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먹는 것뿐이겠는가. 입는 것, 공부, 취미까지도 암묵적 강요에 의한 ‘집단 선택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지난해 도입한 ‘일ㆍ학습 병행제’를 일반계고 학생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청년고용률 제고 방안을 내놓았다. 또 선진국에 버금가는 직업훈련 시스템을 마련하는 내용의 ‘직업훈련 혁신 3개년 계획’도 수립하겠다고 했다.

일ㆍ학습병행제는 독일과 스위스의 직업훈련 시스템을 들여온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40%에 불과한데 청년고용률은 60%인 독일, 대학진학률이 70%를 넘어도 청년고용률이 40%도 안 되는 한국의 역설적 상황을 타개해보자는 취지다.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초등학교 때 소위 ‘공부’를 할 것인지 기술 장인이 될 것인지 정해진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생의 진로는 대체로 대학을 졸업할 때쯤 결정된다. 초ㆍ중ㆍ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고 헤맨다. 어릴 때부터 ‘좋고 싫음’을 구분하지 않도록 강요받은 사회질서 속에서 자란 탓이다. 또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자신의 ‘기호’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집단의 조화를 해치는 일이라며 터부시한 결과다. ‘좋고 싫음’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개인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는다. 아무리 좋은 직업 훈련 시스템을 들여와도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나는 과연 인생 살면서 심장을 뛰게 하는 그 무언가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내 아이는 그렇게 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편식을 허락하는 것으로…. 

신창훈 정책팀장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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