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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정보, 분양시장서도 줄줄이 샌다…‘오더’를 아십니까

- 분양상담사 한 사람이 200만건 보유하기도

- 입주예정자 정보수집 경찰 수사착수 등 피해사례 속속 드러나

[헤럴드경제 = 윤현종ㆍ민상식 기자] # 작년 서울의 A 단지 분양 현장. 가족과 함께 견본주택을 방문한 회사원 김 모(37)씨에게 한 떴다방(이동식중개업소)업자가 붙었다. 그는 김씨에게 종이와 펜을 건넸다. 이름과 연락처, 사는 곳을 적어달라는 것. 김씨에게 ‘투자냐 실거주냐’ 등을 따져물은 업자는 그에게“좋은 정보를 주겠다”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김씨는 내심 떨떠름했지만, 청약당첨이 중요했던 시점이라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 후 김씨는 A단지 청약에서 떨어졌지만, 분양업자들의 광고전화와 문자에 지금껏 시달린다. 아파트 뿐 아니라 오피스텔을 보라는 전화도 왔다. 그가 “내 이름과 번호를 어찌 알았냐”고 물어보면 ‘기억을 못 하시나본데, 그때 현장에 오셨다’고 둘러댔다. 김씨는 “본적도 없는 현장을 가봤다고 우기면서 호객행위를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당사자의 동의없는 개인정보가 부동산 분양시장의 청약자 집객ㆍ미분양 마케팅 등에 사실상 무차별 유통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 정보들의 묶음을 ‘오더’라는 은어로 부른다. 오더를 수집하는 유형도 다양하다. 가격도 공짜부터 ‘부르는 게 값’인 정보까지 천차만별이다. 스팸문자나 전화(1차)부터 사기분양(2차)까지 피해도 만만찮다. 

<사진설명> 당사자의 동의없는 개인정보가 부동산 분양시장의 청약자 집객ㆍ미분양 마케팅 등에 사실상 무차별 유통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 정보들의 묶음을 ‘오더’라는 은어로 부른다. 사진은 부동산업자들이 동의없이 보낸 광고메시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사진1, 2) [사진 = 윤현종 기자]

 
▶ 오더 수집유형 다양…가격도 제각각 = 분양대행ㆍ시행업계 등에 따르면 가장 흔한 오더수집 유형은 견본주택을 이용하는 경우다. 업자가 떴다방 부스에 들르는 예비청약자를 상대로 동의없이 정보를 받은 뒤 이를 유통시킨다. 작년 6월 위례신도시 분양현장을 찾았던 한 모(41)씨는 “떴다방은 한 군데를 들렀는데 3곳에서 전화가 와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전통적으로 최근에 입수된 것일 수록, 또 강남권 거주자 정보일 수록 가치가 높다. 2∼3년 전부턴 강남3구(강남ㆍ서초ㆍ송파)에 한정된 ‘강남권 거주자’의 범위가 강동구까지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둔촌ㆍ고덕 등 재건축단지가 생기면서 이쪽 거주자의 ‘몸값’이 뛰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분양업자 사이에선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등 고급단지가 들어선 광진구 거주자 정보도 선호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가격대는 없지만 ‘부자들 정보’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업자들은 귀띔했다. 심지어 한 분양상담사는 200만 건에 달하는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으)로 시작하는 분양 광고전화를 활용한 방식도 있다. 전화를 건 문의자의 개인정보를 물어 이를 수집해 활용ㆍ유통하는 경우다. 이 때 담당자들은 대부분 동의절차를 어물쩍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이 유형은) 대면없이 수집된 정보가 많아 계약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며 “보통 우리끼린 공짜로 공유하는 ‘걸레(가치 없는)오더’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카드사와 담합해 빼낸 개인정보를 계약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 경기 광교신도시의 B오피스텔 분양업자는 2011년 분양 당시 C카드사의 VVIP고객 오더를 받아 계약 30건을 성사시켰다. 이같은 오더는 보통 건 당 수백만원을 받고 유통된다. 당시 인근 현장의 한 분양 관계자는 “(분양업자가) 카드사 직원에게 건넨 수수료는 계약 한 건 당 100만∼200만원 선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표> 분양시장 ‘오더’ 유형 및 피해사례

스팸부터 2차피해까지…해결책 없나 = 오더로 인한 피해도 상당하다. 실제 서울 강동구 천호동서 작년 분양한 R단지입주예정자 D씨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동의없이 부동산업자에게 유출돼 다량의 스팸문자를 받고 있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넣었다. 강동경찰서는 해당 업자를 상대로 입주예정자들의 정보가 새나간 경위를 조사중이다.(헤럴드경제 2월 14일자 11면 ‘이번엔 아파트 입주예정자 정보도 샜다’ 참조)

분양사기 등 2차피해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2009년께 한 수도권 대학캠퍼스 인근 원룸 분양이 유행하는 과정에서 ‘묻지마’ 광고 메시지를 믿고 투자했다 등기 지식에 어두워 피해를 본 이들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 인근의 한 분양관계자는 “신혼ㆍ은퇴자부부 등이 그런 업자들의 먹잇감이 됐었다”고 말했다.

현행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거래신고 외엔 개인정보 제3자 제공 시 별도 동의가 필요하다. 거래요청자의 연락처도 동의없이 제3자에겐 줄 수 없다.

이에 따라 최근 견본주택 분양현장에선 개인이 동의한 정보만 수집해 마케팅을 하는 등 자정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현장에선 이같은 관행이 여전하다. 수도권의 한 분양대행사 대표는 “현장 간 고객DB가 유통되는 건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통제가 잘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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