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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올림픽] ‘얼음공주에서 천의 얼굴까지’ 김연아 17년 스토리
박미희 씨는 아이들 고모가 내다버린 허름한 스케이트를 얼른 주워왔다. 두 살 터울 언니가 스케이트 타는 모습에 반해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조르던 둘째딸 연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섯 살 연아는 온통 흠집이 난 스케이트를 품에 안고도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그리고 과천시민회관 링크에 살다시피 하며 조금씩 스케이트의 재미에 빠져갔다. 김연아의 ‘금빛 역사’는 빨간색 낡은 스케이트에서 시작됐다.

▶얼음공주에서 천의 얼굴까지=김연아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미셸 콴(미국)을 보며 처음으로 올림픽 꿈을 가슴에 품었다. 빠른 속도로 야무지게 기술을 익혀나간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남들이 몇 년에 걸쳐서도 하기 힘든 5가지 점프기술(토루프, 플립, 러츠, 루프, 살코)을 1년 만에 모두 습득했다. 그리고 2004-2005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며 기대를 모았다. 또래에 비해 점프와 기술은 나무랄 데 없이 똑 부러졌지만 문제는 ‘연기’였다. 지금은 전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선수로 첫손에 꼽히지만 주니어 시절엔 아무 변화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외국 심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당시 한 코치는 “국제심판들이 연아의 표정을 보고 얼음처럼 차갑다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수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에 익숙했던 외국 심판들의 눈에 김연아의 얼굴은 무색무취의 백지장 같았다. 하지만 2006년 여름 시니어 무대 데뷔를 앞두고 국내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 아이스쇼에서 김연아는 예브게니 플루셴코, 알렉세이 야구딘(이상 러시아) 등 기라성 같은 피겨스타들과 공연하며 ‘쇼’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김연아는 당시 공연을 마친 뒤 “이제 피겨 연기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빙판 위에서 내 느낌을 연기로 표현하는 법, 음악을 느끼는 법, 관중과 호흡하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 후 캐나다 전지훈련을 시작하고 브라이언 오서 코치,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와 손을 잡으면서 김연아의 연기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눈빛 하나, 손끝 동작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계산했다. 롤모델인 미셸 콴마저 “나를 뛰어넘는 훌륭한 연기”라고 극찬했다.


▶타고난 강심장…여왕을 지탱한 힘=많은 이들은 김연아의 강점 중 하나로 꼽는 게 바로 ‘강심장’이다. 열혈팬들은 김연아에게 ‘대인배 김슨생’이라는 재미있는 별명도 붙였다. 조그만 것에 휘둘리지 않는 대범함을 지녔다는 의미다. 김연아의 ‘강심장’은 만들어진 것일까, 타고난 것일까. 어머니 박미희 씨는 “담력 훈련이란 걸 따로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연아는 그런 강심장을 타고난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현석씨는 조금 다른 해석을 했다. “연아의 강심장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김 씨는 “연아라고 왜 안 떨리겠나. 하지만 자기 실력을 과신해서 목표를 높게 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레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자기 실력이 100이면 딱 100만 믿고 가는 아이다. 그래서 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분석한 딸의 모습은 이번 소치 올림픽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연아는 수백명의 취재진과 경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담담하게 훈련에 집중했고 목표를 묻는 반복되는 질문에도 “금메달보다는 내 자신의 연기만 생각하고 있다”고 쿨하게 답했다. 아버지 김 씨는 “연아에겐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내 딸이긴 하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며 웃었다. 그는 “예전에 허리부상 때문에 한참 고생했을 때도 딱 하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연아의 ‘정신력’이었다”고 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이후 목표가 사라진 그를 단단하게 지탱한 것도, 2018 평창 올림픽 유치에 힘을 보탠 것도, 후배들을 올림픽 무대에 세우고 은퇴하겠다는 결심도 모두 강한 정신력과 사명감에서 나왔다. 소치 올림픽에서 화려한 마침표를 찍은 김연아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팬들 앞에 다시 설지 기대된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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