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2연패 주자로 지목돼 큰 부담을 앉고 뛰던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는, 혹시나 하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그녀의 꿈을 당당히 이뤄냈다. 명불허전이었다. 또한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반 바퀴를 남기고 역전시키는 심석희의 추월은 실로 전광석화처럼 삽시간에 이뤄졌다. 그리도 갈망했던 순간에 그녀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헤쳐 온 세월을 떠올리며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그렇게 한마음이 됐다.
무엇보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경기의 은메달은 값진 수확이었다. 이승훈, 김철민, 주형준의 팀플레이는 3량짜리 쌍둥이 열차가 나란히 선로를 달리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서로간의 교류와 호흡과 일체감이 인생사 같이하면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했다. 또한 모텔을 전전하며 큰 성과를 이룬 컬링 팀의 지난한 열정과 봅슬레이 팀의 투혼은 아마추어리즘의 진수였다.
반면 김연아의 은메달 수상은 세계인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개최지의 그릇된 욕망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스포츠의 부당한 국가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오히려 당사자인 김연아만 의연했다. 실수하지 않고 자신의 고별무대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담대함으로 이어졌다.
빅토르 안의 선전은 곧 우리 빙상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양면성이 부각됐다. 군중심리로 인한 일방적인 쏠림현상도 문제였다. 물론 1등 만능주의와 양지에만 줄을 대려는 파벌의식은 타파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의 브레이크가 없는 마녀사냥식 폭주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편협함이었다.
더군다나 상대선수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대한 언어폭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당사자인 우리 선수는 그들과 내일도 오늘처럼 빙상장에서 같이할 동료라는 사실을 어찌 모르는가?
이번 동계 올림픽은 우리가 목표한 예상성적의 과도함과 기존 해외 정보수집망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풍선을 필요이상 부풀게 만든 것과 같다. 결국 부양(浮揚)이 심하니 떨어지는 낙폭도 그만큼 커졌다. 한마디로 국민의 기대치만 한없이 올려놓는 우를 범했다. 실체와 다른 주입식 지침은 관련 선수에게도 독이 됐다.
다행히 선수와 대다수 국민들은 메달의 색깔에 연연해하지 않고, 최선이 곧 최고라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보였다. 이제 남은 숙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다. 소치의 막대한 자금 투여가 올림픽 저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문화와 스포츠가 혼합된 지구촌 축제의 성격으로 단순화시켜, 경제적인 올림픽 개최가 우선시돼야겠다. 동북아지역 국가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때이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