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있는 골퍼들이 필드를 지배한다. 멘탈 게임인 골프에서 색깔은 단순히 패션이나 스타일링에 국한되지 않는다. 팬들에게 강한 존재감을 심어주고 소통하는 효과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심리적 안정감으로 스코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우즈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었던 리드 역시 ‘컬러’를 통해 우즈와 동일시하는 일종의 자기 최면을 걸었고, 이는 마지막날까지 흔들림없는 실력을 발휘하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리드는 자신의 영웅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김수안 스포츠심리 연구원은 “모방을 통한 동일시 행동이다. 자신의 롤모델을 닮고 싶은 마음에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와 비슷해질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되고 자신감이 생기는 효과를 얻는다. 우승을 하면서 리드의 자신감은 몇 배 더 상승할 것이고 이는 수행(플레이)으로 직결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리드 뿐만 아니라 많은 프로 골퍼들이 ‘색깔’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있다.
필드에서 컬러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선수로는 리키 파울러(미국)를 꼽을 수 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오렌지컬러로 통일한 의상을 즐겨 입어 ‘오렌지색’ 하면 바로 파울러를 연상케 한다. 파울러가 특히 대회 마지막날 오렌지색으로 중무장하는 이유는 오렌지색이 모교인 오클라호마 주립대 상징색이기 때문이다. 최종 라운드에서 엄청난 압박감을 받더라도 뇌가 친숙한 컬러를 통해 평범한 날로 인식하면서 안정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 선수 가운데는 단연 ‘핑크 공주’ 폴라 크리머(미국)다. 지난 2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3년 8개월만에 통산 10승째를 올린 크리머는 헤어 리본부터 의상, 골프공까지 온통 핑크색이다. 크리머는 지난해 말 비행기 조종사와 약혼을 발표해 그의 주위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국내 선수 가운데는 자신의 이름대로 하늘색을 즐겨 입는 김하늘(비씨카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색깔있는 골퍼’의 원조는 타이거 우즈다. 우즈는 어머니 쿨티다가 염소자리인 우즈에게 붉은색이 힘을 준다면서 16세 때부터 붉은색 셔츠를 입을 것을 권했다고 한다. 미신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우즈의 ‘파워’를 상징한다. 레드와 블랙 패션으로 필드에 나타나는 우즈의 모습만으로도 동반자들은 지레 주눅이 든다. 그레그 스타인버그 스포츠심리학자는 “붉은색은 공격성을 의미한다. ‘내가 이곳을 지배하겠다’는 우즈의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우즈의 ‘붉은 힘’은 올시즌 아직 우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지만, 필드를 물들이는 ‘색깔 전쟁’은 여전히 팬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